김용석 산업1부 차장 |
망하는 기업에서 나타나는 가장 비극적인 장면은 구심력이 사라지고 원심력만 남는 순간이다. 잘나가던 벤처기업 한 곳이 망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적이 있다. 회사 주식을 갖고 있던 직원들은 한때 하나같이 수십억, 수백억 원의 주식 부자였다.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주가가 폭락하자 깡통계좌만 찬 채 은행과 친척에게 수천만, 수억 원의 빚을 진 빚쟁이로 전락했다.
술자리에서 직원들은 일찌감치 회사를 등지고 주식을 팔아치워 한몫 챙겨 떠난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회사에 애정이 많고 성공을 확신했던 사람들일수록 더 손해를 본다는 자괴감에 빠졌다. 조직의 생존이라는 공동 목표에 힘을 모으는 구심력이 사라진 곳에는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한다는 원심력만 남았다. 재능이 뛰어난 인재일수록 회사를 먼저 떠났다. 결국 회사는 위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무대 뒤로 사라지고 말았다.
2000년대 중반 외국 자본에 매각된 한 대기업도 그랬다. 당시 최고경영자(CEO)인 A 씨는 회사 회생을 위해 주주와 노조를 설득하기보다 노조와 타협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노조도 회사를 살리기보다 기존 혜택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이들은 대마불사(大馬不死) 논리에 기대 정부에 떼를 썼다. 회사의 가치를 믿고 투자한 개미 투자자들은 어느새 이들의 생존전략에 이용되는 안전판이 되어 있었다.
망한 기업에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게 아니다. 일본 경제기획청 장관을 지낸 사카이야 다이치는 ‘조직의 성쇠’라는 책에서 기업이 몰락하기 시작하는 현상 중 하나로 ‘기능체의 공동체화’를 꼽았다. 기업은 본래 외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능체인데, 조직이 성장하면 구성원들의 지위와 권한을 확대하는 내부 목표가 외부 목표를 앞서게 된다. 그런 관행이 누적되면 기업은 기능체의 성격(구심력)을 잃고 사내 각 조직의 이익(원심력)을 먼저 추구하는 공동체 성격을 띠게 된다.
맥킨지 파트너 출신인 최정규 누리매니지먼트 디렉터는 망해가는 기업을 판별하는 특징 중 하나로 지저분한 화장실을 꼽기도 했다. 회사가 하락세를 타는 어느 순간 아무도 화장실 등 회사 공동 이익을 위한 자산을 챙기지 않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GM의 군산공장 폐쇄 선언으로 한국GM 위기에 대한 여러 진단과 대책이 나오고 있다. 위기의 원인에 대해 “GM 본사가 고금리 대출과 불공정한 이전가격으로 이익을 빼먹었기 때문이다”, “군산공장 가동률이 20%로 떨어질 정도로 회사가 어려운데도 직원들이 노조를 앞세워 높은 임금을 받았다”는 등의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기술력 부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도 지목됐다. 그러나 사실은 회사가 회생할 가능성이 낮았기 때문에 기술에 꾸준히 투자하지 않았고, 노조는 실제 성과보다 임금 빼먹기에 골몰했고, 한국GM 경영진은 미국 본사부터 챙기자는 심산으로 경영판단을 해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방만한 경영이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논리를 앞세워, 회생이 어려운 부실기업에 세금을 쏟아 붓는 것을 반대하는 여론이 벌써부터 뜨겁다. GM이 자구와 회생을 입에 올리려면 한국GM이 망할 기업이 아니라는 신호부터 시장에 보내는 것이 최우선이다. 원심력을 구심력으로 바꾸는 작업은 말 그대로 뼈를 깎는 노력 없이는 어렵다. 지원 방안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한국GM의 대주주, 경영진, 노조 모두 회사를 살리겠다는 명확한 계획을 공개하고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김용석 산업1부 차장 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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