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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단독]“남편이 집안일 책임감있게 하도록 잔소리 대신 권한을 넘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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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행복국가 1위’ 비결은]평창 온 솔베르그 총리 단독 인터뷰

동아일보

평창 겨울올림픽을 참관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 그는 15일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노르웨이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로 선정된 이유’ 등에 대해 설명했다. 특히 “일과 가정의 양립과 균형이 개인의 행복감도 높이고, 노동생산성도 높인다”고 강조했다.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 페이스북 캡처


15일 오후 6시 반경 한국 방문 첫날 공식 일정을 마무리하며 서울의 한 호텔에 들어선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57)는 로비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유쾌하게 일행과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강추위에도 가벼운 코트 한 벌만 걸치고 있었다. 곧바로 기자를 만나러 라운지 카페에 들어선 솔베르그 총리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없었다. 30분간 예정된 인터뷰는 40분을 넘겼지만 그는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화려한 입담을 뽐냈다. 28세에 정계에 뛰어든 뒤 30년간 앞만 보고 달린 에너지가 느껴졌다.

―유엔 산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는 지난해 노르웨이를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로 선정했다. 비결은 무엇인가.

“복지 제도, 국가 안보 덕일 것이다. 나도 항상 ‘행복이란 무엇인가’ 하고 자문해 본다. 넓게 보면 행복이란 스스로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인 것 같다. 일과 가정이 균형을 이룰 때 사람들은 자기가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고 행복할 수 있다.”

―내게도 아이가 하나 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일과 가정의 균형을 어떻게 지켰는지 묻고 싶다.

“집안일을 나보다 남편이 더 많이 하도록 했다. 내가 처음 장관을 맡았을 때 아이들은 각각 4세, 2세였다. 당시 장관으로서 이민 및 통합, 지방정부 업무에 관여해 큰 의제가 많았다. 그래서 남편이 거의 매일 저녁밥을 했다. 그러더니 아예 집안 살림을 직접 계획하기 시작하더라. 남편이 육아휴직을 나보다도 더 많이 썼다. 그 덕에 난 의회로 좀더 빨리 출근하게 됐다.”

―당시 집안일을 도맡은 남편은 괜찮아 했나.

“남편한테 물어보자. 남편이 여기 와 있다. (노르웨이어로 남편을 부르더니 기자에게 소개하며) 이 사람이 내 남편이다. 내 생각엔 그는 매우 행복했을 것이다.(웃음)”

솔베르그 총리가 즉흥적으로 소개한 남편 신드레 핀네스 씨는 사업가로 총리와 함께 자녀 2명을 키웠다. 그는 일본에서 일정을 마치고 한국을 방문한 아내를 만나기 위해 노르웨이에서 한국으로 먼 길을 날아왔다. 그에게 ‘독박 육아’ 경험을 물었다.

―부인 대신 집안일을 많이 했는데 괜찮았나.

“집안일은 할 만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일은 아니었다.(총리와 함께 폭소)”

기자가 인터뷰 중 동석을 권하자 핀네스 씨는 “아내에게 그냥 인사하러 왔을 뿐”이라며 자리를 성급히 비워줬다. 솔베르그 총리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현대 사회에서는 남자들이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속삭였다.

―내가 내 남편에게 말하고 싶은 말이다. 하지만 말해도 별 소용이 없을 것 같다.

“내가 아주 중요한 교훈을 깨달았다. 당신이 만약 남편에게 집안일을 하라고 요구하고 싶은데 여전히 당신이 주도적으로 살림을 계획하고, 당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남편에게 따르라고 요구한다면 그건 정말 잘못하고 있는 일이다. 남편에게 ‘당신에게 집안일을 할 책임이 있으니 당신 원하는 대로 해라’라고 말해야 한다. 남자들은 지시하는 말을 듣는 걸 정말로 싫어한다.”

동아일보

15일 청와대 본관 집현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왼쪽)가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17개 목표를 담은 축구공을 문 대통령에게 선물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여성의 사회 진출을 늘리기 위해 어떤 정책을 추천하는가.

“엄마가 돼서도 기업계든 학계든 정계든 어디서든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줘야 한다. 그러니까 가족과 직업이 삶에서 균형을 이뤄야 한다. 이를 위해 육아휴직이 참 중요하다. 노르웨이에서 육아휴직은 49주인데, 임금 전액을 받는다. 아빠들은 현재 의무 육아휴직을 14주간 내야 하는데 앞으로는 15주로 늘어난다. 엄마들은 의무 육아휴직을 15주간 내고 있다. 유치원, 어린이집이 충분히 마련돼야 함은 물론이다. 또 노르웨이에선 대부분의 기업들이 유연근무제를 도입했다.”

―유연근무제가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우려도 있다.

“우리는 노동생산성이 오히려 증가한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사람들이 근무시간에 밀도 높게 일하기 때문이다. 경직된 제도 안에서는 사람들이 사무실에 앉아 있어도 항상 일하진 않는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노동유연성을 더욱 높여 세계에서 노동생산성이 높은 나라가 됐다. 우리가 애들을 학교에서 데려오려 오후 4시쯤 퇴근한다고 치자. 대다수는 애들을 데리고 와서 저녁을 먹이고는 컴퓨터를 열고 업무를 마무리할 것이다. 우린 이런 방식으로 노동생산성을 높였지 낮추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한국에서도 성폭력 고발 운동 ‘미투(#MeToo)’ 움직임이 있다. 노르웨이에선 어떤가.

“세계적으로 미투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 지난해 10월부터 노르웨이에선 사회 각 방면에서 미투와 관련된 여러 논쟁이 있었다. 우리 당도 미투 이슈가 좀 있었다. 노르웨이는 평등하고 정당한 사회로 인식돼 있음에도 이렇다.”

―지난해 9월 보수당으로서는 1985년 이래 처음 재선에 성공했는데 그 비결은….

“유가 하락으로 경기 침체가 특히 심했다. 경기 침체를 극복하는 과정을 사람들이 평가해준 것 같다. 난민 위기 문제도 꽤 잘 해결했다. 결국 우리는 성과를 내는 사람들이란 믿음이 생긴 것 같다. 우린 대선 공약을 잘 실천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정권을 자주 바꾸는 편이긴 하지만, 이제는 정책 효과를 보려면 정권이 길게 가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개혁과 변화를 꾀하려면 4년이란 시간은 너무 짧다.”

―대선 공약으로 감세(減稅)를 주장했는데, 감세가 복지제도를 해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사람들에게 우리 복지제도가 미래에도 가장 양질일 것이란 확신을 주는 게 중요하다. 그러려면 일자리를 더 많이 창출해야 한다. 세제 개혁은 의회 대다수가 동의했다. 우린 중소기업과 창업가들이 더 생겨나도록 인센티브를 마련했다. 이제 일자리가 늘어나는 걸 느끼고 있다. 이는 감세뿐만이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화합을 이뤄낸 책임감 있는 파트너들 덕이기도 하다. 지난해 우리 임금 인상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이해 관계자들이 유가 하락을 고려해 경쟁력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잘 협상했다.”

동아일보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가 본보에 전한 자필 메시지. “올림픽 게임 동안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선수들과 조직위원회, 그리고 한국 정부에 감사하다”고 쓰여 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노동시장 이해관계자들을 어떻게 설득했나.

“그들끼리 알아서 협상을 했다. 이들은 수출 중심 기업들이 임금 인상 수준을 결정할 주체라고 결론을 냈다. 그래서 공공 부문이나 비교적 안정된 부문은 자연스럽게 수출 기업들보다 더 임금을 올려선 안 되는 상황이 됐다.”

―‘탈석유 시대’에 노르웨이는 어떻게 일자리를 늘릴 수 있나.

“노년층 서비스를 비롯한 공공 분야에도 기회가 있다. 민간 부문에서는 건설에서 일자리가 늘 수 있고, 특히 관광 분야 일자리가 증가한다. 정말 많은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노르웨이에 와서 북구의 밤, 사람이 별로 없어 느낄 수 있는 고요함을 즐기기 때문이다. (웃으며) 더 많이들 오시길 바란다.”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노르웨이는 인터넷 시스템이 최상인 국가 중 한 곳이라서 미래에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본다. 어려움이라 하면, 사람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기술을 새롭게 바꾸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기술 제도를 개혁해 사람들이 ‘평생 교육’을 받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새 정책을 만들고 있다.”

―포브스는 당신에 대해 ‘재정에 대한 보수적인 입장과 대중의 요구를 반영하는 인본주의적 시각을 잘 혼합했다’고 평가했다.

“우리는 진보적 보수당(liberal conservative party)이다. ‘진보적 보수’라고 말하는 게 적절치 않게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재정에 있어선 보수적이되, 가정과 관련된 정책 등 여러 사회 이슈에선 진보적이다. 그 결과 난민이든 난민 신청자이든 이민자들의 자녀 세대는 노르웨이 교육 시스템에서 잘 적응해가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노르웨이 태생 부모의 자녀들과 소수자의 자녀들의 학교 진학률이 동일했다.”

::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는? ::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는? △1961년 노르웨이 베르겐 출생 △1986년 노르웨이 베르겐대 졸업(사회·정치·경제통계학 전공) △1989년 28세 때 시의원에 당선돼 첫 정계 진출 △2001∼2005년 지방정부·지역개발부 장관 △2004년 노르웨이 보수당 대표 취임 △2013년 노르웨이 두 번째 여성 총리로 취임 △2017년 보수당 대표로서 32년 만에 처음으로 재선 승리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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