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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칠레에 이민자 늘고 캐나다에 난민 느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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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에서는 지난 한해 동안에만 아이티인 입국자 수가 2배 이상 늘었다. 캐나다 퀘벡주에서는 난민 신청자가 5배 가량 폭증했다. 모두 전례가 없는 수준이다. 지난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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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연방경찰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칠레로 들어온 아이티인의 수는 10만4782명에 달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22일(현지시간)보도했다. 이는 한해 전 4만8783명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칠레 이민당국 관계자는 “이민자 수가 이처럼 단기간에 폭증한 건 칠레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했다. 칠레의 아이티인 입국자 수는 2013년 2016명, 2015년엔 1만3299명 정도였다.

‘유례 없는 폭증’에는 지난해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내 아이티 이민자들에 대한 TPS 갱신 중단 발표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TPS는 자연재해나 내전 등을 피해 미국에 온 난민들에 임시 거주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미국은 2010년 아이티 대지진으로 유입된 아이티 난민들에 TPS를 부여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갱신이 중단될 거란 보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아이티를 떠난 이들 상당수가 미국 대신 칠레로 향한 것으로 월스트리트저널은 봤다. 또 선진국이 아닌 개발도상국으로의 이민이 늘고 있는 최근의 추세도 한 원인인 것으로 분석했다.

캐나다도 비슷한 상황이다. 미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미국 내 아이티 이민자들이 주로 몰려들었다. 캐나다 이민난민국의 난민신청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퀘벡주의 내륙 지역 사무소에 접수된 난민신청은 1만7705건으로, 한해 전 2555건에 비해 무려 5배 가량 늘었다. 특히 TPS가 종료될 거란 보도가 나오기 시작하던 7월부터 급격히 늘었다. 미국 내 아이티 이민자들은 주로 미국 뉴욕주를 거쳐 캐나다 퀘벡주로 불법 월경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나라에 여파가 집중된 이유는 이들 나라가 이민자 또는 난민에 비교적 우호적이기 때문이다. 칠레의 경우 관광비자를 통해 입국을 해도 취업이 가능하다. 또 취업을 한 이민자의 경우 영주권이 부여되는 경우도 많다. 불법 이민자의 자녀에게도 교육 기회와 의료 혜택 등이 제공된다. 급격한 고령화가 진행 중인 칠레는 노동력 수입 차원에서 이민자에 대한 문호를 개방해왔다. 때문에 아이티는 물론, 경제 위기를 겪는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등에서도 이민자들이 몰려든다. 2013년 2만5780명이던 칠레의 영주권자는 2016년엔 5만3188명으로 늘었다.

캐나다는 유엔난민협약에 따라 불법 입국한 난민에 대해서도 무조건 난민 심사를 실시한다. 심사 기간 동안 취업 기회와 무료 의료 혜택 등 보호조치도 제공된다. 2002년 미국과 체결한 ‘제3국 협약’의 허점 역시 미국 내 이민자들이 캐나다로 불법 월경을 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해당 협약은 미국에서 캐나다로 입국한 난민들을 미국으로 돌려보내 난민 심사를 받도록 하고 있지만, ‘불법 월경자’의 경우 돌려보낼 근거 규정이 없다. 캐나다엔 현재 4만700건의 난민 신청이 밀려있다. 일손이 부족해 심사에 2년이 걸릴 상황이다.

미주 지역에서 대규모 난민을 수용할 경제력이 있는 나라가 미국 외에 사실상 이 두 나라 뿐이라는 점도 이민자가 몰리는 이유다. 2015년 시리아 난민 사태와 관련해 당시 남미에선 칠레 외에도 베네수엘라,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 우르과이, 파라과이 등이 난민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는 초인플레이션과 생필품 난으로 오히려 자국 국민들이 난민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루과이에서는 시리아 난민들이 생활고를 호소하며 차라리 본국으로 보내달라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칠레와 더불어 난민들의 주요 망명국이었던 브라질 역시 예전 같지 않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브라질의 경제 상황이 악화된 게 칠레의 이민자들이 늘어난 또 다른 이유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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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나라가 앞으로도 지금과 같을 지는 알 수 없다. 칠레에서의 이민에 대한 여론은 아직까지는 우호적인 편이다. 현 미첼 바첼레트 정권 역시 생산성 유지를 위해서라도 이민자를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급격한 이민자 증가가 고용 시장을 악화시킬 거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하루면 직장을 잡았던 이민자들이 요즘엔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수용할 집도 부족해 30명의 이민자가 한 집에 사는 사례도 보고됐다. 몇몇 의원들은 입국자가 방문 목적에 부합한 비자를 미리 발급받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곧 임기를 시작하는 중도 우파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 당선인 역시 “이민자들이 과도하게 몰린다면 규제를 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캐나다 퀘벡주에서는 그동안 반이민 정서가 밖으로 표출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아이티 이민자가 대거 유입돼 올림픽 경기장까지 임시 거처로 내주면서 ‘반이민 피켓’이 등장했다. 중도 우파 야당 연합의 프랑수아 르고 대표는 “이민자들은 이미 너무 많고, 부담도 크다”며 “마치 국경이 없는 것처럼 법을 어기는 건 충격적”이라고 했다. 보수 야당의 미셸 랑펠은 “유럽에서의 국가적 반이민 정서가 캐나다서도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올해도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내 엘살바로드 이민자 20만명에 대한 TPS 종료를 결정했다. 오는 6월엔 온두라스 이민자 6만 여명에 대해서도 같은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미국에서 쫓겨나는 이민자들이 늘고, 아메리카 대륙에서 난민들이 갈 만한 나라들이 사라지면서, 캐나다와 칠레로 향하는 난민들은 더욱 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두 나라에서 반이민 여론이 더 커지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서 난민들이 향할 곳이 아예 없어질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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