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예루살렘 선언’ 뒤 평화협상 거부한 팔레스타인 압박용 풀이
30% 분담해왔던 미국, “다른 나라들이 더 기여할 때 됐다” 의미도
미국이 결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엄포대로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생명선’인 지원금 절반을 삭감했다. 유엔은 난민 어린이 교육 등 각종 인도주의 사업에 “파괴적 차질”이 빚어지리라 우려했다.
미 국무부는 16일 올해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기구(UNRWA) 지원금 1억2500만달러(약 1331억원) 가운데 6500만달러를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헤더 노어트 국무부 대변인이 기자들에게 “미래의 고려를 위한 동결”이라고 말했다고 <알자지라>가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팔레스타인에 1년에 수억달러를 지불하고도 감사와 존경을 받지 못한다”며 팔레스타인에 대한 미국의 원조 자금을 끊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지난 12월6일 미국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 뒤 팔레스타인이 중동 평화협상 논의를 거부하자, 아킬레스건인 원조금을 앞세워 협상 참여를 압박했다는 국제적인 비판이 제기됐다. 트럼프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14일에도 “어떤 평화 계획도 수용하지 않겠다”며 이스라엘과 미국을 비판했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기구 지원금은 70년 가까이 500만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등록 난민들에게 ‘생명줄’ 역할을 해왔다. 서안지구·가자·레바논·요르단·시리아에 흩어져 있는 팔레스타인에게 식수와 식품을 공급하고, 난민 아이들의 교육은 물론 의료서비스와 사회기반시설·일자리를 제공하는 데도 쓰이고 있다. 최대 기여국인 미국은 2016년 이 기금의 30%에 달하는 3억7000만달러(약 3937억원)를 지원했다. 두번째로 기여가 큰 유럽연합(EU)에 비해서도 두 배 가까이 많다. 이와 별도로 미국은 자국 국제개발처 등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2억6000만달러를 지원하기도 했다. 물론 미국이 매년 이스라엘에 지원하는 군사지원 금액은 30억달러 이상이라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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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는 유엔과도 상의하지 않고 이런 중대한 조처를 실행에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워싱턴의 결정에 대해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무엇보다, UNRWA는 팔레스타인 기구가 아니며, UNRWA는 유엔 기구”라며 미국의 조처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 “내 생각에, 그리고 이스라엘 일부 인사들을 포함해 국제적인 참관인들이 공유하는 견해에 의하면, UNRWA는 (중동 지역) 안정성의 중요한 요소”라고 덧붙였다. 뉴욕 유엔 본부에서 이 사태를 보도한 <알자지라> 제임스 베이스 기자는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기구 지원금은 너무 많은 절망적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기구”라며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의 팔레스타인 지원금 삭감은 우선 UNRWA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감을 그대로 반영한 조처로 풀이된다. 하난 아시라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선임 위원은 “팔레스타인 난민을 보호하고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설립한 유엔 기구를 점차 해체하려는 이스라엘의 명령을 따른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기여와 역할을 줄여나가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조처의 일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미 당국자는 <로이터> 통신에 “다른 나라들, 특히 아주 잘사는 국가들이 개입하고 지역 안보와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자신들의 몫을 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지원금을 삭감하는 만큼 다른 나라들이 더 지원하라는 신호인 셈이다. 잔 에겔랜드 전 유엔 인도주의 국장은 “수많은 팔레스타인 취약계층에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미국이 삭감한 만큼 다른 기여국들이 채워달라고 촉구했다.
팔레스타인 난민 야잔 무함마드 사브리(18)는 <알자지라>에 “UNRWA가 없어진다면, 교육도 없고, 의료도 없고, 위생도 없다”며 “어떤 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게 사라질 것”이라며 공포를 드러냈다. 반면 아이다 캠프에 살고 있는 살라흐 아자르메흐(44)는 “만일 그 서비스가 중단된다면,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며 “요르단과 시리아 난민 캠프에서 시작됐던 팔레스타인 봉기가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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