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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한겨레 사설] ‘유치원 영어금지’ 철학도 전략도 없는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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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한 영어유치원의 모습. 최근 영어유치원 등 고가의 사교육은 그대로 둔 채 어린이집과 유치원 방과후 특별활동에서 영어를 금지하려는 정부 방침에 대해 반발이 거세졌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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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거셌던 유치원·어린이집 방과후 특별활동에서 ‘영어 금지’ 방침과 관련해, 교육부가 16일 정부 입장을 내놓는다. 올 3월로 예정했던 시행 시기는 유예할 것이라는데, 국가교육회의 논의 과정에서 전면 재검토 가능성도 포함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애초 놀이중심 위주로 유아교육을 혁신하겠다는 정책에서 시작된 교육부 방침이 ‘교육 불평등을 확산시키는 방안’으로만 받아들여지게 된 현 상황은 안타깝다. 조기 영어교육이 모국어 능력 획득은 물론 아동의 사고력 발달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은 전문가뿐 아니라 우리 사회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바다. 2014년 공교육정상화법 시행에 따라 올 3월부터 초등 1·2학년 방과후학교 영어수업이 금지된 상황이라, 공교육의 일관성 측면에서도 검토할 수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취지가 좋아도 현실에서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정책은 명분도 실효성도 얻기 어렵다. 특히 “100만원짜리 영어유치원은 두고 3만원짜리 방과후만 금지하냐”는 반발에 교육부는 제대로 답을 못 했다. 이들을 논리로만 비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학부모들이라고 모두 ‘조기 영어교육 신화’에 사로잡혀 있다고 보는 것도 선입견이다. 그나마 교육부가 처음부터 공개적인 여론 수렴을 거치고, 비전과 철학을 갖고 반발과 우려를 설득했더라면 논란을 정면 돌파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지난달 중순 슬그머니 시도교육청을 통해 어린이집·유치원에 방침을 알렸다. 초등 1·2학년 영어 금지도 3년의 유예를 뒀던 데 비하면 너무 안이하게 사안을 판단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그러고 나서 정치권에서 우려가 커지자 다시 발을 빼는 모양새다.

최근 법무부 장관의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발언처럼, 조율되지 않은 정부 정책은 신뢰를 떨어뜨릴 뿐이다. 특히 교육개혁처럼 국민 관심이 높은 사안에선 부작용을 미리 예측한 뒤 정교한 시행계획을 마련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필수다. 지난해 김상곤호 출범 이래 수능 절대평가, 자사고·외고 폐지 등 이런저런 개혁안을 추진했지만, 이룬 것은 별로 없이 피로도만 커졌다는 비판을 교육부는 뼈아프게 느껴야 한다. 국민이 공교육을 향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포지티브’한 정책들을 우선적으로 펴나갈 때, 규제나 금지에 대한 필요성도 설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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