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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박래용 칼럼]지금 야당은 정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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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의 힘은 시민의 지지에서 나온다. 의석수가 아니다. 양김(兩金)의 신화가 말해준다. 엄혹했던 시절, 야당 지도자 DJ(김대중)와 YS(김영삼)의 포효는 시민들의 가슴을 뻥 뚫어줬다. 그 사이다 맛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전봇대 위까지 올라가 귀를 쫑긋 세웠다. 지금 야당은 어떤가. 시민들은 청량감은커녕 오늘은 또 무슨 아무말 대잔치를 하나 궁금해서 귀를 세운다.

경향신문

자유한국당의 한 의원은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누가 밝혔나. 우리 보수정권이 밝혔다”고 했다. 전두환 정권은 물고문 질식사를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은폐했다. 고문 경찰관도 축소했다. 밝힌 게 아니다. 의사와 기자·교도관, 민주화세력의 노력으로 진실이 드러난 것이다. 살인자가 마지못해 범행을 자백해 놓고, 진실을 밝혔다고 자랑하는 경우는 없다. 자유한국당의 뿌리가 5공의 민정당인 것은 맞다. 그렇다고 영화 <1987>의 소유권을 주장할지는 몰랐다. 영화 속 연희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라고 묻는 건 자연스럽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전희경(자유한국당 대변인)이 임종석을 향해 왜 군사정권에 저항했느냐고 따질 줄은 몰랐다. 그건 몰상식하고 부정의하다. 대기업 총수이자 전국 17만 상공인을 대변하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대신 답했다. “민주주의를 이루는 길에 자신을 희생한 수많은 분들께 우리는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해야 한다.” 그게 상식이고 도리다.

지금 야당은 반항심에 가득 찬 중2 같다. 성안에 갇혀 자기 편만 본다. 타조처럼 머리를 모래에 파묻고 있다. 초등학생이 평화통일을 주제로 그린 그림으로 탁상달력을 만들었다고 은행에 몰려가 난리법석을 피웠다. 정상이 아니다. UAE 의혹 제기는 정치사에 희대의 자살골로 기록될 것이다.

30대에 최연소 야당 당수를 맡은 영국의 토니 블레어는 시민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나는 우리가 젊은 나라가 되기를 희망한다. 공동의 목적을 가진 나라, 고이 간직하고 살아갈 이상이 있는 나라, 도전에 대비하는 단결된 나라, 국민이 나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노력해주는 것에 바탕을 둔 나라를 진정으로 희망한다.”

제1야당 대표 홍준표는 전기가 온 것 같은 감동의 연설 대신 찌릿한 막말로 날을 새우고 진다. 신문과 방송과 포털과 여론조사기관은 모두 좌파에 장악됐다고 한다. ‘울보’ 류여해와 함께 보여줬던 이별식은 국민개그 수준이었다. 국민적 의혹인 다스 소유자를 밝히는 수사는 어깃장을 놓고 있다. 신보수주의를 확장하겠다면서 대구 지역구를 몰래 찜한 처신은 보수인지, 보신인지 헷갈리게 했다. 홍준표에 대해 대법원에서 무죄를 내리자 여권에서 쾌재를 불렀다는 얘기가 과장만은 아닐 것이다.

지난주 한국당 지지율은 20대 4%, 30대 5%, 40대 7%였다. TV의 애국가 시청률만도 못하다. 20~40대는 전체 유권자의 56%다. 미래 세대가 외면하고 있다는 것은 미래가 없다는 뜻이다. 야당은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 시민을 위로하기는커녕 짜증나고 지치게 한다. 시민을 끌어안지 못하고, 희망도 주지 못한다. 그래서 시민은 야당에 등을 돌리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6월 지방선거는 해보나 마나다. 헌정사상 정통 보수세력이 총선과 대선, 그리고 지방선거까지 3연패를 당한 적은 없었다. 지금 보수 지지층은 자포자기에 빠져 있다. 믿고 기댈 수 있는 리더도, 정당도 무너졌기 때문이다. 보수의 아이콘 박근혜는 국정농단을 심리 중인 형사22부 재판이 정치보복이라며 거부하고, 국정원 특활비를 추징당할 형사32부 재판엔 변호인을 새로 내세웠다. 박근혜 저항의 목적은 보수의 재건인가, 돈의 보존인가.

보수는 나라의 틀을 크게 보고 아우르는 능력이 장점이다. 책임과 희생과 헌신은 보수의 덕목이다. 한국당이 보수의 적통(嫡統)을 자처한다면 시대의 요구와 시민의 희망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현실은 되레 시민의 희망을 꺾고 역사의 시계를 되돌리는 정당으로 인식되고 있다. 누구도 망가진 자전거, 고장난 세탁기 수리를 놓고 ‘보복’ ‘복수’라고 부르지 않는다. 홍준표는 “우리 당 험담하는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들 말만 포털 메인 기사로 올라온다”고 했다. 사이코패스 같은 말이 매일 난무하는 게 그 당 주변의 일상이다. 시민 80%가 찬성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에 홀로 반대하는 배짱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대의(代議)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들에게 의원직이란 자영업에 가깝다. 시민의 뜻과 정반대로 가는 당에 미래가 있을 리 없다. 나폴레옹은 “나는 언제나 2년 후를 생각하며 살았다”고 했다. 야당은 2년 후를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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