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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美, 증시 날고 경기 살아나는데…달러값은 하락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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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의 역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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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달러'의 귀환은 요원한 것일까.

미국 달러화가 경기 회복, 주가 상승, 금리 인상 등 각종 강세 재료에도 속절없이 떨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주목된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XY)가 지난 12일(현지시간) 90.73을 기록해 최근 3년여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달러인덱스는 지난해 10%가량 추락해 2003년 이래 가장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으며 올해 들어서만 약 1.4%나 떨어졌다.

작년 말 적잖은 외환 전문가들이 달러 강세를 점쳤다. 데이비드 우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 외환담당 대표는 지난해 12월 열린 경제전망 세미나에서 "애플과 구글 등 미국 기업들의 막대한 이익 잉여금을 미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송환세(repatriation tax)'가 시행되면 해외 곳곳에서 미국 기업들의 달러 수요가 촉발돼 달러 강세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BoA메릴린치는 올해 1분기 중 달러화가 유로당 1.1달러 수준의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미 증시 활황과 함께 글로벌 자금을 흡입하고 있는 데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수차례 기준금리 인상이 예고된 점도 달러 수요를 키울 재료로 기대를 모았다. 대규모 감세안 시행으로 미 경기 확장세가 가속화하면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속도가 한층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하지만 달러는 이 같은 전망을 비웃듯 연초부터 주요 통화에 비해 일제히 약세를 보이고 있다.

세드 하이다르 하이다르캐피털 대표는 WSJ에 "달러 강세 요인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런 요소들이 전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말레이시아, 칠레, 콜롬비아 등 자원개발 신흥국 통화 대비 달러 약세에 베팅했다.

달러 약세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외환시장이 주목하는 건 미국 경제 강세와 미국 금리 인상이 아니라 유럽과 일본의 경제 호조라고 분석했다. 유럽과 일본이 장기간 양적완화를 종료하고 통화긴축 모드로 선회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얘기다.

마크 매코믹 TD증권 북미 외환전략 대표는 "달러 약세는 글로벌 시장 환경의 변화를 뜻한다"면서 "이제 유럽이나 일본이 투자하고 싶은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증시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다른 주요국의 주가 상승에 비해 나을 게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 재무장관을 역임한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전미경제학회 연례총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승리 이후 미국 증시 상승률이 높긴 하지만 같은 기간 독일 일본 홍콩 등 증시가 더 많이 올랐거나 미국에 못지않다"고 지적했다.

또 전문가들은 달러 가치가 속절없이 떨어진 주요 원인 중 하나로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우는 '미국우선주의'를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우선주의 정책이 달러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배리 아이컨그린 UC버클리 교수는 "달러 가치를 따질 때 안보 프리미엄이 매우 크다"고 언급했다. 미국이 자국 중시 행보를 보이자 한국과 일본 등 미 동맹국들의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면서 미국을 통한 안보에 대한 확신이 약화됐고 이러한 안보 프리미엄 감소로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화 비중(63.5%)이 2014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도 달러 약세의 원인으로 거론된다. 젠스 노드빅 엑샌티데이터 최고경영자(CEO)는 CNBC방송에 "현재로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이 무산될 가능성이 50%"라며 "NAFTA 붕괴는 유로화·엔화 강세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은 브라질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고 앞으로 멕시코와 아시아 국가들이 무역 관계를 늘릴 가능성이 크며 이는 유로화에 더욱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경제 전문가들은 대규모 감세 정책이 미국의 재정적자를 늘려 달러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감세는 해외 자본을 끌어들여 달러를 강세로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지만 재정적자가 훨씬 더 악화되면 달러 약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은 미 재정적자가 내년에 1조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미 국내총생산(GDP)의 5%에 달한다.

마크 챈들러 브라운브러더스해리먼 통화전략 부문 대표는 CNN머니에 "감세안이 단기 성장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미국 경제의 장기적 성장 잠재력을 변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오랫동안 지속된 달러 랠리 약발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는 2011년 저점에 비해 25%가량 올랐는데 이는 미 경제의 펀더멘털에 비해 더 많이 오른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 수출 기업들에 약달러 현상은 반가운 소식일 수 있다. 수출 경쟁력 확보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월가 금융기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약달러를 원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해온 만큼 달러 강세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계속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나친 달러 약세는 미 경제의 신뢰도를 훼손시키고 미 증시와 부동산 등 투자 매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한 수입 물가 상승을 자극해 당초 기대치보다 물가상승률이 높아지면 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가 한층 빨라질 수 있는 점도 부담이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서울 = 오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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