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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World & Now] 韓美, 대북 엇박자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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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해 11월 북한이 화성-15형을 발사했을 때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20분간 통화를 하고 "북한 미사일 성능이 이전보다 진전된 것 같다. 한미 공조를 통해 제재와 압박을 계속하자"는 통상적인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날 밤 10시,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다시 한번 통화를 했다. 누가 먼저 걸었는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미국시간 아침 8시인 점을 감안하면 백악관이 출근하기를 기다려 청와대에서 다급하게 통화를 요청한 듯하다. 문 대통령은 1시간에 걸쳐 "어제 발사된 미사일이 지금까지 미사일 중 가장 진전된 것이기는 하지만, 재진입과 종말 단계 유도 분야 기술이 입증되지 않았고 핵탄두 소형화 기술 확보 여부도 불분명하다"고 설명했다.

당시 상황을 되짚어보면 미국은 북한의 제6차 핵실험 이후 대북 군사옵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북한이 미국 본토 공격 능력을 확보하는 순간 곧바로 군사적 대응에 들어간다는 일종의 '레드라인'도 갖고 있었다. 화성-15형 발사 소식에 청와대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이번 미사일이 미국 본토까지 날아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자 황급히 다시 전화를 걸어 북한 미사일이 아직 완성 단계가 아니니 섣불리 군사행동에 나서지 말라고 설득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한미 양국 대북 정책의 목표 차이가 드러난다. 미국은 북한 핵·미사일이 미국 본토에 도달하는 것을 막는 것이고, 한국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는 것이다.

양국 정상의 발언을 보면 이 같은 간극은 더욱 분명해진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신년사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평화를 향한 과정"이라며 "우리 외교와 국방의 궁극 목표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재발을 막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하는 상황을 가만히 두고만 보지 않겠다"고 했다. 툭하면 불거지는 한미 간 대북 정책 엇박자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를 나무랄 수도 없다. 문 대통령은 한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안보를 지키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 본토 공격 능력을 갖췄다고 판단되는 순간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은 불가피해 보인다. 한반도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일이지만 막을 수도 없다.

문을 꽁꽁 걸어 잠근 채 핵·미사일 개발에만 몰두하던 북한이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모처럼 세상에 나왔다. 문 대통령이 다시 나설 차례다.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설득해야 한다. 자칫하면 미국이 진짜로 군사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더 이상 핵·미사일 도발은 안 된다고 말이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letswi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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