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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잘못된 핵 경보’ 전쟁위기 한두 번 아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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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하와이 ‘ICBM경보 오작동’ 뒤 ‘실수·오판으로 전쟁’ 우려 고조

1950~2013년 펜타곤 인정 실수만 32건·전문가 조사 1000여건

하와이 하원의원 “트럼프, 북한과 직접 협상” 촉구



2014년 8월 저널리스트 에릭 슐로서가 미국 공영라디오 <엔피아르>(npr) 인터뷰에서 언급한 사례는, 여전히 간담이 서늘하다. 1980년 6월3일 새벽 2시30분,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군사고문 윌리엄 오덤 장군이었다. 소련이 쏜 220개 미사일이 미국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보고였다. 브레진스키는 “확인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전화를 끊었다.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미사일이 220개가 아니라 2200개라는 정정 보고였다. 브레진스키는 사태를 좀 더 확인하는 동안 아내를 깨우지 않기로 결심했다. 워싱턴이 곧 파괴될 거라면 아내가 편히 잠든 채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브레진스키가 카터 대통령에게 군사 보복과 관련한 전화를 걸려던 참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잘못된 경보라는 보고였다. 이 간담 서늘한 실수는 훗날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 컴퓨터에 내장된 46센트짜리 칩의 결함으로 인한 오작동으로 판명됐다.

13일 오전(현지시각) ‘잘못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경보 메시지’ 한 통이 미국 하와이를 들었다 놨다. 다행히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미국과 북한 지도자가 서로 공공연하게 ‘핵 단추’ 크기로 입씨름을 벌인 직후라 많은 이들이 ‘오판과 실수’가 자칫 전쟁이라는 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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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미국 국방부는 1950~2013년 사이, 운 좋게 전쟁으로 번지지는 않았으나 이른바 ‘부러진 화살’로 불리는 중대한 핵무기 관련 사고 32건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슐로서는 정보공개 청구를 활용해 1950~1968년 사이 1000건 이상의 핵무기 관련 사고가 있었음을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대중이 몰라 그렇지 ‘오판과 실수에 의한 전쟁’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뜻이다.

미국만 계획되지 않은 전쟁 도발 위기를 넘긴 게 아니다. 소련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는 ‘핵전쟁으로부터 세상을 구한 남자’로 알려진 고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 사건이다. 1983년 9월26일 ‘세르푸호프-15’ 관제센터 스크린에 핵미사일이 포착됐다. 잠시 뒤 요란한 경보음이 울렸고 네 발의 미사일이 추가로 날아오는 게 보였다. 미국이 소련을 향해 미사일을 쐈대도 전혀 이상할 게 없던 냉전 시기, 페트로프 중령은 직감을 믿고 ‘조기경보 시스템 오작동’이라고 보고했다. 조사 결과, 컴퓨터가 구름에 반사된 태양 광선을 미국이 발사한 미사일 엔진 구름으로 오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1970년대 미국과 소련은 이미 빠른 시간 안에 서로를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었다. 진짜 공격인지 잘못된 경보인지, 대응 발사를 할지 말지를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0~12분에 지나지 않았다. 소련은 물론 미국도 그로부터 40여년이 흐른 현재 매우 노후한 무기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미국의 주요 핵무기 탑재 폭격기 B-52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때 취역한 기종이다. 주요 육상 발사 미사일인 미니트맨3는 1970년에 처음 배치됐고, 1980년대 초반 은퇴가 예정돼 있었을 정도로 낡았다. 슐로서에 의하면, 미니트맨 발사 장치는 9인치짜리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한다. 실제로 미 연방통신위원회(FCC) 조사 결과, 이번 소동의 와중에 하와이 주정부는 잘못된 경보 발령을 막을 안전장치도 갖추지 않고 있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14일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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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현지시각) 하와이 주민들에게 잘못 발송된 긴급경보 문자. <비비시>(BBC)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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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미사일 시스템 노후화와 컴퓨터 오작동에 의한 실수 및 인간의 오판에 의한 전쟁 가능성이 큰 탓에, 대화를 통해 전쟁 가능성을 낮추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툴시 캐버드 하와이 하원의원(민주당)은 <시엔엔>(CNN)에 출연해 하와이의 잘못된 경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협상해야 하는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캐버드 의원은 “과거 우리를 의도하지 않은 핵전쟁 직전까지 몰고 갔던 상황은 바로 이런 류의 실수들”이라며 “왜 하와이 주민들과 이 나라 사람들이 북한의 핵 위협에 직면하고 있으며, 그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대통령이 긴급하게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근본적인 문제에 도달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과 테이블을 사이에 놓고 앉아 직접 협상하라고 촉구해 왔다”며 “협상은 전제조건 없이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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