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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특파원 리포트] 48위안짜리 역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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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교민사회에 찬바람이 거세다. 올 들어 하루가 멀다하고 "○○식당이 문 닫았다"는 식의 얘기가 들린다. 북경한국중소기업협회 최해웅 회장은 "교민 식당 60여 곳 중 최소 10~ 20%가 한계 상황"이라고 했다. 작년 3월부터 불어닥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폭풍이 주범이지만 또 한 번의 충격이 있었다. 작년 10월부터 우리 기업들의 회식과 접대 수요가 급감한 것이다. 한 식당 주인은 "버티고 버티던 각 회사들이 주재원 축소와 철수에 나서면서 큰 타격이 됐다"고 했다.

왕징(望京·베이징의 한인타운)에 모여 있는 교민 식당가는 사실 사드 이전부터 그림자가 드리워져왔다. 대중(對中) 경쟁력을 잃은 한국 제조업체들의 탈(脫)중국 행렬이 이어지면서 한인 사회가 쪼그라든 탓이다. 한때 10만명이라던 왕징의 교민 인구는 이제 그 5분의 1 안팎으로 줄었다. 사드는 그런 '만성적 위기'를 '급성'으로 가속화했다.

이 와중에도 거짓말처럼 잘나가는 한국식당도 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와 무관한 한 순두부 전문점이 주인공이다. 두 명의 한국 청년이 창업한 이 집의 대표 메뉴는 48위안(약 7800원)짜리 순두부다. 2015년 1호점, 2016년 2호점에 이어 이달 말 3호점을 열고 내년까지 8호점을 낼 계획이다.

조선일보

베이징 코리아타운 왕징의 상가들.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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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성공 비결은 "처음부터 중국인들을 겨냥했다"는 한마디로 압축된다. 한국식당끼리 출혈경쟁을 해야 하는 왕징이 아닌 '진짜 베이징'으로 눈을 돌렸다. 외국 공관과 사무실이 많은 량마차오의 1호점, '베이징의 이태원'격인 싼리툰의 2호점, 1호점 인근의 3호점 모두 왕징과 떨어진 곳이다. 손님의 90%는 중국인이다. 베이징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궈마오(國貿·무역센터)에 4호점 자리도 알아보고 있다.

임대료 높기로 악명 높은 베이징 도심에서 고급 메뉴도 아닌 한국 서민음식을 파는 건 무모해 보인다. 하지만 수년에 걸친 치밀한 시장조사가 불가능을 뚫었다. 얼큰한 훠궈(火鍋·중국식 샤브샤브)를 좋아하는 중국인 입맛에 통할 거란 확신이 적중했다. 순두부 한 그릇 값도 실은 왕징보다 50% 이상 비싼 것이다. 대신 소수 메뉴에만 집중해 맛과 효율적인 재고관리로 승부했다. 요즘 가게는 점심시간에 줄 서서 먹는 명소가 됐다. 사드로 인한 반한(反韓) 감정이 극성일 때도 중국인 손님이 줄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인이 하는 짝퉁 가게가 생겨날 정도다.

베이징 교민사회에서는 올해 혹독한 구조조정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많다. 큰 위기다. 그러나 좁은 한국 커뮤니티를 넘어 더 넓은 중국시장을 상대로 한 공략에 전력투구한다면, 지금의 위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을 두 청년의 역발상 도전이 보여준다.

[이길성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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