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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월드 인사이드] 120년째 1위 NYT… 그 뒤엔 설즈버거 가문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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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代 가족경영' 성공 비결]

황색 신문 판치던 1896년 인수

팩트·분석·문장 3원칙으로 다른 신문 압도하는 정론지 등극

올해 취임한 신임 발행인 외6촌과 막판까지 후계 경쟁

최고 칼럼니스트 출장 땐 1등석… '경쟁과 대우' 원칙으로 살아남아

지난 1일 미국 최고 권위 신문인 뉴욕타임스(NYT)의 발행인에 37세의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A G Sulzberger)가 취임했다. 이로써 NYT는 옥스·설즈버거 가문이 5대에 걸쳐 120년 이상 경영을 이어가는 새 역사를 쓰게 됐다.

한 가문이 120년 이상을, 그것도 업계 최고의 자리를 계속 지키며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어렵고도 드문 일이다. 미국 유력지 중에서 현재까지 가족 경영을 이어가는 곳은 NYT밖에 없다. 1933년부터 그레이엄 가문이 경영해온 워싱턴포스트는 2013년 '아마존'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에게 넘어갔다. 월스트리트저널을 소유했던 밴크로프트 가문도 2007년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프에 신문사를 넘겼다. 설즈버거 가문만이 경제 위기와 정치적 외압, 디지털화(化)가 가져온 위기까지, 절체절명의 순간들을 모두 이겨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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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설즈버거가(家)가 NYT 경영을 시작한 건 지방지 '채터누가 타임스' 발행인이었던 아돌프 옥스가 1896년 파산 위기의 NYT를 인수하면서부터다. 그는 '옐로 페이퍼'들이 판을 쳤던 뉴욕 신문업계에서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철저한 확인을 거친 팩트, 사려 깊은 분석, 뛰어난 문장'이라는 제작 원칙을 고수했다. 결국엔 정론지 NYT가 황색 저널리즘을 압도했다.

딸 하나뿐이었던 옥스가 77세로 사망하자 1935년 사위 아서 헤이스 설즈버거가 발행인을 이었다. NYT 오너가(家)를 '옥스·설즈버거 가문'이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서 헤이스는 1961년까지 NYT를 이끌며 순익 1억달러, 일요판 100만 부 시대를 열었다. 그는 아들이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맏사위 오르빌 E 드라이푸스에게 발행인 자리를 넘겼다. 드라이푸스가 2년도 안 돼 사망하면서 다시 아들 아서 옥스 설즈버거가 37세로 발행인에 올랐다. "어리다"는 우려와 달리 아서 옥스는 30년간 NYT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NYT의 위기는 1992년 그의 아들 아서 옥스 설즈버거 주니어가 발행인에 오른 이후 닥쳐왔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신문의 침체, 글로벌 금융 위기 등이 겹치며 NYT는 생존 위기에 내몰렸다. 2009년엔 부채가 10억달러에 달해 멕시코 통신 재벌인 카를로스 슬림에게 연 14%의 고리에 2억5000만달러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했다. 자회사 보스턴글로브와 포털 업계의 샛별 '어바웃닷컴'까지 팔았다. 슬림이 신주인수권을 행사해 NYT 지분 17%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올라섰지만, 설즈버거 가문은 이사회의 3분의 2까지 지명할 수 있는 '클래스B' 주식은 끝까지 팔지 않아 경영권을 지켰다. 설즈버거 주니어는 위기 속에서도 디지털 전환의 주춧돌을 놓았다. 온·오프라인 통합 뉴스룸을 만들고, 디지털 서비스 유료화를 단행해 구독료가 광고료를 넘어서는 수익 모델을 만들어냈다.

설즈버거 가문은 '120년'이라는 세월을 이겨냈다. '최고의 신문'이라는 경쟁에서도 승리했다. 비결이 무엇일까. 미국 언론계와 학자들은 ▲분명한 승계 원칙과 혹독한 후계 수업 ▲최고의 인재에게 최고의 대우 ▲언론 정도를 지킨 신념을 꼽는다.

아서 옥스 때부터 설즈버거 가문은 65세 전후에 발행인을 후대에게 넘기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또 후계자는 공개 경쟁을 시켰다. 신임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 발행인은 편집국 부국장인 외(外)6촌 샘 돌니크와 마지막까지 경쟁한 끝에 부발행인으로 임명되며 후계자가 됐다. 그는 현장 기자로서도 혹독한 훈련을 거쳤다. 2009년 NYT에 기자로 입사해 주로 사회부에서 근무한 그는 중부 시골 도시인 캔자스시티 주재 기자로도 일했다.

'펜타곤 페이퍼' 특종 보도는 NYT의 위상을 크게 끌어올린 사건이다. 미국이 베트남전 확전 명분으로 삼은 '통킹만 사건'이 조작됐다는 국방부 기밀문서를 닉슨 정부로부터 강력한 '보도 금지' 압력을 받고서도 보도했다. 당시 자문 법률회사조차 "보도했다가 기소되면 변호를 맡지 않겠다"고 했다. 아서 옥스 설즈버그는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기밀 문서를 직접 읽은 뒤 보도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나중에 그는 "죽을 만큼 무서웠지만 미국 국민들이 그 문서를 읽을 권리가 있고 NYT는 보도할 의무가 있다고 확신했다"고 회고했다.

'최고의 인재를 데려와 최고의 대우를 해준다'는 인재 존중도 설즈버거 가문의 경영 원칙이다. 'NYT의 진보 논조와 맞지 않는다'는 반대에도 닉슨의 연설 담당이었던 윌리엄 사피어를 칼럼니스트로 발탁한 것도 아서 옥스였다. 사피어는 1978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현재 NYT의 칼럼니스트들은 모두 수억원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저자이기도 한 톰 프리드먼은 해외 출장 때 비행기 퍼스트클래스를 타고 최고급 호텔에 묵게 해준다.

설즈버거 가문을 다룬 '신뢰: 뉴욕타임스 배후의 은밀하고 강력한 가족'의 공동 저자 수전 티프트는 "후계자 후보군의 치열한 경쟁과 서로 간의 화합이 100년이 훌쩍 넘는 NYT 가족 경영의 성공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뉴욕=김덕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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