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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분수대] 아프리카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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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현상 논설위원


아프리카 대륙 상당수 국가의 국경선이 자를 잰 듯 직선이 된 계기는 1884년 열린 베를린 회의다. 콩고강 어귀의 영유권 분쟁 해결을 위해 소집된 이 회의에서 아프리카 서해안에서 동해안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지역의 식민 분할이 확정됐다. 회의에 참여한 영국·프랑스·독일 등 14개국의 외교관 앞에 놓인 아프리카 지도는 절반이 비어 있었다. 유럽 역사의 일부분인 지중해 해안이나 대항해 시대 이후 유럽에 알려진 서·남·동해안 외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종이에 멋대로 선이 그어지자 실제의 땅이 고통받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공동체였던 토착 부족이 나뉘었고, 이질적이거나 적대적인 문화가 뒤섞였다. 빈곤과 부패, 분쟁 등 오늘날 아프리카가 겪는 비극에 서구 사회가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다. 흑인 노예들이 세운 국가 라이베리아를 아프리카 정책의 전진기지로 삼았던 미국도 이 회의의 참가국이었다.

아프리카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말에 또다시 분노와 치욕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백악관에서 열린 이민정책 회의에서 아프리카와 일부 카리브 국가를 두고 “우리가 왜 거지소굴(shithole) 국가에서 오는 사람들을 계속 받아 줘야 하느냐”며 모욕한 것이다. ‘shithole’은 국내 언론에서 대체로 ‘거지소굴’로 번역됐지만, 사실 어감은 이보다 훨씬 더 고약하다. 오죽하면 세계 언론들이 이 말을 어떻게 번역해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을까. 아프리카 55개국을 대표하는 아프리카연합(AU)은 “수많은 아프리카인이 미국에 노예로 끌려간 역사적 현실을 고려할 때 그런 발언은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와중에 트럼프가 정보기관에서 일하는 한국계 여성을 두고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는 보도까지 나와 우리 심기도 불편해진다.

트럼프의 인종차별적 태도는 정치인이 되기 전부터 뿌리 깊다. 아파트 임대사업을 하던 20대 때에는 흑인들의 임대 신청은 받지 않겠다고 해서 피소되기도 했다. 1989년에는 백인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던 흑인과 히스패닉 청소년들의 사형 촉구 광고를 자비로 실은 뒤, 이들이 무혐의로 풀려나도 사과하지 않았다.

얼마 전 트럼프의 정기 건강검진을 앞두고 미국 내 정신건강 전문가 70여 명이 담당 의사에게 그의 정신 능력을 진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국 내 반트럼프 인사들의 괜한 시비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걱정마저 든다. 더구나 그 대통령이 ‘크고 작동 잘되는 핵버튼’까지 자랑하는 판 아닌가.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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