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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전공의 폭행’ 부산대 병원, 대리수술도 23차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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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 유명 교수 수술로 알고

특진비 1420만원 병원에 지불

교수는 후배 의사에게 수술 맡겨

“교육 명분으로 시작, 관행으로 굳어”

정부 “면허정지 12개월로 처벌 강화”

국내에서 둘째로 큰 국립대병원인 부산대병원에서 전공의 폭행은 물론 대리 수술까지 관행적으로 이뤄져온 것으로 드러났다. 의료계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11일 부산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부산대병원 이모(50) 교수는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총 23차례에 걸쳐 후배 의사인 신모(39) 조교수에게 대리 수술을 시켰다. 환자들에게 받은 수술동의서에 자신을 집도의로 기록하고, 진료기록부도 자신이 수술한 것처럼 작성했지만 수술실에 아예 들어가지 않았다. 환자들은 정교수이자 신경의로 유명한 이 교수가 수술하는 줄 알고 총 1420여 만원의 특진비를 지불했다.

경찰은 지난해 11월 부산대병원을 압수수색해 이 교수가 집도한 것으로 기록된 234건의 진료기록부를 분석해 이런 사실을 밝혀냈다. 이 교수는 후배 교수에게 수술을 맡겼지만 대리 수술은 아니라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조교수가 수술하는 동안 같은 병동에 있었고,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달려가 대처할 수 있기 때문에 대리 수술이 아니다”며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 교수를 의료법 위반 혐의로 조만간 검찰에 기소할 예정이다. 이 교수의 지시로 대리 수술을 한 신씨는 의료법 위반 혐의뿐 아니라 전공의를 상습적으로 폭행한 상습상해 혐의가 추가돼 검찰로 넘겨질 예정이다.

대리 수술은 그동안 여러 차례 문제를 일으킨 바 있다. 삼성서울병원에선 2016년 7월 해외 학회에 참석한 산부인과 교수가 환자 동의 없이 후배에게 수술을 맡긴 사실이 드러났다. 유명 성형외과 의사가 자신이 수술할 것처럼 환자에게 얘기한 뒤 실제 수술은 다른 의사에게 맡기는 ‘유령수술’도 논란이 됐다. 부산대병원에서 뇌출혈 수술을 받던 형이 사망한 박경원(55) 씨는 “수술 뒤 형이 혼수상태에 빠졌는데도 집도의를 볼 수 없어 사무실로 찾아갔더니 ‘내가 수술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며 기 막혀 했다. 부산대병원 노조 관계자는 “처음에는 지도 교수가 조교수에게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대리 수술을 시키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수술실도 들어가 보지 않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졌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집도의가 수술실 안에 있지 않으면 대리 수술로 본다. 이 사건을 수사한 이재경 부산 서부경찰서 수사팀장은 “수련병원의 경우 집도의가 직접 수술은 하지 않더라도 수술실 내부에서 참관해야 한다. 수술실을 벗어나는 순간 이때부터 대리 수술로 본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와 복지부의 입장도 비슷하다. 김주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환자에게 고지 없이 수술 집도의가 바뀌는 건 잘못된 행위이며 무조건 법 위반이다”면서 “최근 들어 법적 처벌 수위도 높아지는 편”이라고 말했다. 곽순헌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장은 “의사의 대리 수술이 확인되면 현행 의료법상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분류돼 면허 정지 1개월까지 가능하다. 앞으로는 정지 기간을 12개월로 강화하는 법 개정안이 시행될 예정이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의사가 수술 집도하는 걸 무조건 ‘대리 수술’로 보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윤성 서울대 의대 교수(대한의학회장)는 “후배에게 수술을 맡기고 해외 학회 등으로 나가는 건 대리 수술이 명백하지만, 지도 교수가 전공의 등에게 수술을 지시하는 건 전후 상황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정종훈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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