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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검은빛 골든글로브… "여성이여, 우리의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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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 제작자 성추행에 반발해 영화계 여성 인권 캠페인 벌여

시상식에 검은 드레스 입고 참석

"여성은 강하다, 진실을 밝히자… 그것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

-오프라 윈프리

"음식 준비나 하려고 모인 게 아니다, 일했기 때문에 이곳에 있습니다"

-프랜시스 맥도먼드

"우리는 책 가장자리에만 있었다… 더 이상 공백에 살지 않을 것"

-엘리자베스 모스

여배우들의 뜨거운 외침은 온통 검은색이었다. 7일(현지 시각) 오후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호텔에서 열린 제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배우 니콜 키드먼은 트로피를 거머쥐고 "어머니(My mama!)"라고 외쳤다. "제 어머니는 제가 어릴 때부터 여성 운동을 지지해왔어요. 그 덕에 제가 지금 서 있습니다. 이 성취는 그녀 것입니다!" 그녀는 TV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날 시상식장은 모두 먹빛이었다. 모든 배우와 감독·제작자가 칠흑처럼 검은 옷을 입고 시상식에 들어섰다. 작년 말 할리우드를 뜨겁게 달군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 성추행 사건에 집단 항의를 표시하는 이른바 '미투 캠페인(Me too·'나도 당했다'는 뜻)'의 연장이었다. 몇몇 이 가슴엔 '타임스 업(Time's Up)'이라고 적힌 배지가 붙어 있었다. '그들의 시대는 끝났다(Their time is up)'는 뜻이다. 더 이상 성폭력을 겪고도 침묵하지 않고, 차별 앞에 웅크리지 않겠다는 여성 영화인들의 의지가 담겼다.

시상식 주인공 역시 대부분 여성이었다. 공로상을 받은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여성은 강하다. 이제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을 밝히자. 그게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면서 "새 시대가 왔다(A New day is on the horizon)!"고 외쳐 기립 박수를 받았다.

여성 영화인들의 웅변은 계속됐다. 작품상은 딸을 죽인 살인범을 찾아 나선 엄마 이야기를 다룬 '스리 빌보즈(마틴 맥도나 감독)'와 한 여고생의 성장 이야기를 그려낸 '레이디 버드(그레타 거윅 감독)'가 받았다.

영화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은 '스리 빌보즈'의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오늘 밤 이곳에 있는 여자들은 음식 준비나 하려고 모인 게 아닙니다. 우리는 일을 했기에 이곳에 있습니다"라고 했다. TV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엘리자베스 모스는 "지금껏 우리(여성)는 책 속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책 가장자리 여백에만 있었다"면서 "우리는 더 이상 가장자리나 공백에서 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방송인 세스 마이어스의 말도 화제였다. 그는 등장하자마자 "숙녀 여러분, 그리고 아직도 자리 보전하고 있는 신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해 청중을 웃기는 한편, "(성추행 장본인으로 지목된) 하비 와인스틴이 오늘 안 보이네요.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마 20년 후쯤 골든글로브가 회고 특별 무대를 열 때엔 '첫 조롱거리가 된 사람'으로 나올 테니까요"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시상식 직후 뉴욕타임스는 '코끼리는 이날 방에 없었다'고 썼다. '방 안의 코끼리'는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모두가 아는 중요한 문제란 뜻이다.

조선일보

(사진 왼쪽부터)오프라 윈프리, 엘리자베스 모스, 나오미 캠벨, 리즈 위더스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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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식은 이후로도 반전의 연속이었다. 현지 매체·평론가들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덩케르크'가 작품상이나 감독상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수상하지 못했다.

감독상은 작년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았던 '셰이프 오브 워터'의 기예르모 델 토로가 받았다. 남우주연상은 '다키스트 아워'의 게리 올드먼에게 돌아갔다. 외국어영화상은 작년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인 더 페이드'가 안았다.

[송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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