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5 (수)

대출승계 받으러 갔더니 "펀드 가입하라" 강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블라인드 대한민국 ④ ◆

최근 경기도 성남시 소재 위례신도시 아파트 분양권을 매수한 은행원 최 모씨(36)는 매도인이 내야 할 양도수수료를 대신 내 달라는 불법적인 요구를 거부했다. 양도세 대납은 불법 증여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은행원인 최씨는 모르지 않았다. 대신 양도수수료에 해당하는 금액을 조금 밑도는 금액만큼 매매가를 높여줬다.

최씨는 "양도세 비용까지 감안해 매매가를 높이는 것은 이해하지만 양도세를 엉뚱한 매수인에게 내라고 하는 매도인도 문제고 이를 전달하는 공인중개사도 문제"라고 목청을 높였다.

매매가가 올라간 것은 물론이지만 취득세도 더 내야 했다. 최씨의 굴욕은 이어졌다. 기존 분양권 소유자의 중도금 대출을 승계하기 위해 은행을 찾았더니 금융권 후배뻘로 보이는 은행 직원의 황당한 제안이 이어졌다. 은행 직원은 "중도금 대출 승계 탓에 인지대금 15만원 중 7만5000원을 은행이 부담해야 한다"며 "고객님께 이 돈을 받을 수는 없고 대신 신용카드 발급과 펀드상품에 가입해 달라"고 요구했다. 인지대는 모든 거래관계에서 발생하고 계약 당사자가 반반 나눠 부담하는 게 민법상 원칙이지만 이런 사실을 모르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은행들이 뻔한 '꺾기' 수법을 내비친 것이다. 최씨는 "일종의 동업자 의식 때문에 신용카드와 펀드 가입 계약을 마치고 나왔지만 지금도 씁쓸함이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어렵게 서울에서 첫 아파트를 장만한 직장인 박 모씨(39) 부부. 두 달 전 마음에 드는 중층·남향 매물을 7억6000만원에 사들이기로 하고 가(假)계약금 300만원을 냈다. 하지만 가계약 이튿날 집주인은 중개인을 통해 "매매가를 1000만원 올려 달라"고 요구했다. 또 다른 중개인이 "1000만원 비싼 7억7000만원에 (해당 아파트를) 팔아줄 테니 그쪽 계약을 파기하라"고 매도인을 꼬드겼기 때문이다. 가계약 사실은 일대 공인중개사들 사이에 퍼지고 있었다.

매도인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면 매도인이 가계약금 갑절인 600만원을 매수인에게 돌려줘야 한다. 300만원을 벌고 이 지역 아파트 구입을 포기하는 '분노'와 1000만원을 올려주고 아파트 구입을 달성하는 '치욕' 사이에서 박씨는 눈앞이 캄캄했다.

결국 박씨는 성공적인 치욕을 선택했다. 매도인이 1000만원 더 비싼 가격에 다른 매수인을 찾아도 박씨에게 가계약금 300만원과 별도로 300만원을 뱉어내야 하니 순이익은 700만원이다. 따라서 박씨는 매도인의 순이익을 700만원 올려줄 수 있도록 매매가 7억6700만원을 제시했고 매도인은 이를 받아들였다.

[박재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