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9 (일)

中 거주 탈북여성은 `분단의 인질`같은 처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1637년 병자호란 때 조선의 딸들이 청나라로 끌려갔다 몇년 후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환향녀(還鄕女)'란 이름으로 멸시를 당합니다. 40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북한에서는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중국에 거주하는 탈북민 여성은 처벌이 두려워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라종억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

"병자호란 당시 조선의 여성들이 청나라의 인질로 끌려간 곳이 중국의 선양인데 현재 탈북여성이 주로 머무르는 곳도 선양입니다. 병자호란 때 환향녀들이 '조선의 인질'이라면 탈북여성은 '분단의 인질'로 볼 수 있습니다."(강동완 동아대 교수)

라종억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과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중국 거주 탈북여성의 처지가 '환향녀'와 같다며 이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5월까지 9개월간 중국 현지에서 만난 탈북 여성들의 생활실태와 인권문제를 담은 책(북조선 환향녀)을 최근 발간한 이유이기도 하다.

라 이사장은 중국에 거주하는 탈북여성의 인권이 심각하게 유린당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인터뷰 대상자 100명 중 77명(77%)은 납치나 인신매매, 취업사기 등 비자발적 의사로 중국에 거주하게 됐고, 나머지 23명도 빈곤을 면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탈북했지만 결과적으로 인신매매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며 "탈북여성들은 언어가 통하지 않고 연고도 없어 중국을 탈출하지도 못하는 데다 불법체류 발각 시 강제북송된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탈북여성들은 성유린을 당한 후 출생한 자녀들 때문에 죽지도 못하고 구타와 협박 속에 인간으로서의 최소한 보편적 권리도 누리지 못한 채 살고 있다"고 소개했다.

책을 통해 전해진 중국 거주 탈북여성의 생활상은 그야말로 처참하다. 18세의 한 여성은 일요일에 친구와 술을 마시고 다음날 눈을 떠보니 중국이었고 열한 살이 많은 중국인 남성에게 팔렸다. 엄마 손에 이끌려 강을 건넌 15세의 한 여성은 중국에서 엄마와 각각 다른 곳으로 팔린 후 수년간 서로 생사를 모른 채 지내야만 했고 17세에 아이를 낳았다. 한 20대 여성은 열 번이나 인신매매를 당했다.

라 이사장은 중국 거주 탈북여성의 인권유린을 막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교력을 발휘해 중국이 유엔협약을 지키도록 요구하고 유엔난민기구 등 국제사회에 알려 탈북민들의 강제 북송을 막아야 한다"며 "심리·의료 지원 서비스가 필요하며 인신매매 브로커 활동을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탈북여성의 자녀들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선시대에 환향녀들의 자식은 오랑캐의 피라며 관직에 오르지 못하는 등 각종 핍박을 받았고 지금의 탈북여성 자녀들은 어머니가 행방불명돼 북한에서 당원이 되지 못하고 취직도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저자들은 현재 국내 거주 탈북민 3만여 명 중 70%가 여성이고 이 중 70~80%가 중국 체류자였다는 점을 감안해 국내 탈북민에 대해서도 폭넓고 세심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라 이사장은 "국내에 거주하는 탈북민·고려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어 이들을 대상으로 국내 안정화교육을 매주 실시하고 있다"며 "향후 중앙아시아에서도 언어교육이나 문화 적응화교육 등 '우리 민족 한마음띠 운동'을 전개해 통일기반 조성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중국이든 국내든) 탈북여성의 삶과 인권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문제"라며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봉진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