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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셰익스피어가 말하는 권력의 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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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권력은 무자비하지만 권력자는 자비로워 보인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는 자비롭고 신의 있으며 정직하고 인간적이며 경건하게 보여야 한다"고 일갈한다.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권력자의 속살을 뜯어보면 곧잘 권력에 집착하는 냉혹한 살인마가 나타나는 이유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준대로 받은대로'는 권력과 권력자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국립극단은 지난 8일부터 명동예술극장에서 '준대로 받은대로'를 무대에 올렸다. 이 작품은 지나칠 만큼 권력의 리얼리즘을 담아 불편하기 짝이 없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나온 번역서도 셰익스피어 작품으로는 드물게 2종에 그친다.

하지만 올해만큼은 이 문제작을 재밌게 즐길 수 있다. 지난해 말부터 벌어진 구중궁궐의 추문이 어디서 왔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준대로 받은대로'의 배경은 오스트리아 빈이다. 공작 빈센시오는 법과 질서가 무너진 사회에 절망해 수도원으로 들어간다. 빈센시오를 대체한 인물은 안젤로다. 마치 올리버 크롬웰처럼 안젤로는 공포정치를 단행한다. 사건은 클로디오의 통정(通情)에서 시작한다. 그는 여자친구와 사이에서 혼전 임신을 하고 만다.

갈등은 안젤로가 사실상 사문화한 법을 들고 나오면서 시작한다. 처녀를 임신시킨 남성을 사형에 처한다는 법을 근거로 그는 클로디오에게 사형을 언도한다. 이야기는 클로디오가 여동생 이사벨라에게 구명을 부탁하면서 절정에 다가간다. 견습수녀인 이사벨라는 빼어난 미모를 지녔다. 그는 오빠를 선처해 달라고 안젤로를 찾아간다. 도덕군자 안젤로는 처음에 거절하지만 은밀히 성상납을 요구한다. 대신 오빠의 사형을 유예하겠다고 하면서. 마치 여의도 후미진 골목에서 추한 행동을 일삼는 정치인들을 보듯 말이다.

권력자의 추잡한 속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비로운 군주 빈센시오는 막판에 해결사로 등장한다. 안젤로의 권력을 빼앗고 다시 권좌에 앉아 꼬일대로 꼬인 인물들의 갈등을 한번에 풀어버린다.

갈등의 해법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통정한 사람들은 모두 결혼시키고 자신은 오빠를 위한 마음이 아름답다며 이사벨레에게 청혼한다. 과연 미모 때문인지 마음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최소한의 구애도 없이 결혼을 요구한다. 마치 빈센시오가 아름다운 결론을 이끌어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선의를 강요하는 것 자체도 관객들은 불편할 뿐이다.

'준대로 받은대로'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를 무대로 표현한 것에 있다. 무대는 한 개의 원형 무대와 주위를 둘러싼 동심원 모양의 무대 두 개로 이뤄진다. 높이는 사선이어서 두 개의 원이 돌아갈 때마다 무대는 높낮이가 바뀐다. 권력이 돌고 돌아 제자리에 오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은 지난 한 해 유례없는 권력의 부침을 목격했다. 셰익스피어 말대로 권력자의 속살이 언제나 그렇듯 똑같다면, 결국 또 다른 쳇바퀴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른다. 공연은 오는 28일까지.

[김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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