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우리는 인생에서 아주 많은 사람과 만나게 된다. 그 목적이 연애든, 사업이든, 또다른 이유든. 그렇게 타인과 마주할 때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들의 무엇을 볼까. 아마도 나이, 직업, 배경 등을 볼 것이다. 조금 더 파고들어 학교, 출생지, 가족관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표면적인 기준에서 상대를 파악하고 평가하며 살아간다.
그 정도의 방법이 최선일 때가 많지만 사실 이는 어떻게 보면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알고 나는 저 사람을 믿는가. 이영학만 해도 모두가 희귀병을 앓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불우이웃이라고만 생각했다. 무조건적 의심은 옳지 않지만 표면적인 면만 보고 신뢰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선입견은 무섭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이를 볼 때 그 사람의 외향과 직업, 배경을 본다. 그리고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일 거야’라고 생각한다. 표면적인 것들에 대한 신뢰는 쉽사리 깨지지 않는다. 누구나 상대의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조언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며 수없이 만나는 사람들 중 누군가의 내면을 들여다 볼 기회는 흔치 않다. 이 때문에 직업, 성별, 나이 등에 수많은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덧씌워질 수밖에 없다.
B.A 패리스의 ‘비하인드 도어’는 바로 이런 점을 파고드는 작품이다. 세간의 선입견이 누군가에겐 얼마나 큰 공포가 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잭과 그레이스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부부다. 남편 잭은 승률 100%를 자랑하는 유명 가정 폭력 전문 변호사로 영화배우와 같은 외모까지 갖춘 근사한 남자다. 그레이스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여동생이 있다. 부모마저 거부하는 여동생의 존재까지 보듬어주는 잭은 그레이스에게 있어 최고의 상대였다.
(사진='비하인드 도어' 책표지) |
하지만 신혼여행지부터 공포는 시작된다. 잭은 공포의 냄새를 즐기는 사이코패스로 그레이스는 열려 있는 문조차 제 발로 나갈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히게 된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완벽한 남편. 그러나 남편의 친구 부부 중 한 명은 완벽함 속에서 그레이스의 불안을 눈치채고 그레이스는 잭의 궁극적 목적인 동생을 지키기 위해 남편을 무너뜨릴 계획을 세운다. ‘비하인드 도어’는 심리 스릴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잭은 별다른 것을 하지 않는다. 그저 말로, 상황을 유리하게 돌리는 능력만으로 그레이스가 정상적 생활을 할 수 없도록 만든다.
초반에는 대체 왜 그레이스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의아해진다. 하지만 ‘비하인드 도어’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시점 교차로 어떻게 그레이스가 잭의 공포에 짓눌려 현재 상황에 이르렀는가를 상세히 설명한다. 특히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한 여자의 공포심만으로 스토리를 끌고 갈 수 있는 힘에 감탄하게 된다. 신선한 트릭이 가득한 정통추리소설이나 다양한 기술의 힘을 빌어 범인을 밝혀내는 범죄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공포, 사이코패스, 부부 등 배경에 으레 등장할 법한 성(性)적인 요소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이 작품의 매력을 더한다.
작가는 사이코패스인 잭이 성적 흥분자가 아닐뿐더러 성행위 자체를 혐오하는 인물로 설정하며 부부와 공포의 매개체가 될 수 있는 성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한다. 그 덕에 ‘비하인드 도어’는 B급 소설에서 벗어나고 더욱 깔끔한 구성과 진행으로 독자를 이끈다. 또 한순간에 보통의 삶을 앗아간 공포의 한가운데서 자신과 여동생을 포기하지 않고 주체적 여성으로서의 신념을 유지해나가는 그레이스는 억압을 즐기는 잭과 더할 나위 없이 '극'적인 짝이다. 그레이스는 벌벌 떨기만 하는 여주인공이 아닌 자존감이 뚜렷한 여성이기에 그레이스의 시점에서, 그레이스의 감정으로만 진행되는 이 책이 자칫 단조롭고 지루하게 흘러갈 여지를 막았다. 그레이스의 자존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잭과 내가 싸운 적이 한 번도 없고 우리가 모든 것에 절대적으로 의견을 같이하며, 내가, 똑똑한 서른두 살의 여성이 아이도 없이 하루 종일 집에서 소꿉놀이하는 데 만족한다는 말을 믿는 그들의 멍청함이 경이로울 정도다”
작가는 이 대목을 통해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 여성이 주체적일 때 그 삶이 어떤 변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그 점에서 이 대목은 ‘비하인드 도어’를 재밌는 스릴러 소설에서 한 단계 격상시킨 것이기도 하다. ‘비하인드 도어’는 신선한 전개가 압도적이다. 유명한 추리소설가들의 작품이나 차고 넘치는 범죄 드라마가 범죄의 방식과 장치에 몰두했다면 ‘비하인드 도어’는 오직 인간의 감정만으로 결말까지 질주한다. 이것이 바로 심리 스릴러의 진수라며 선전포고를 하는 느낌이다.
318쪽에 이르지만 책은 가볍다. 읽어나가며 흐름을 막는 부분도 없다. 초반, 지루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100여 쪽을 지나면 단숨에 읽힌다. 100만 달러에 영화 판권이 계약돼 곧 영화로도 만나볼 수 있다.
-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