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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4차산업 혁명과 의료의 미래] 헬스케어 오디세이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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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오래전 일이다. 생명과학부 한 교수님께서 갓 귀국한 내게 물으셨다. "김 교수, 암을 누가 정복할 것 같아?"

정신과 의사에서 과학자로 전향한 젊은 교수에게 던진 질문의 의도는 분명했다. 흔한 의사와 생명과학자 사이의 경쟁이다. 암을 진단, 치료하는 것은 의사지만, 궁극적으로 암을 정복하는 것은 과학자라는 자부심이다. 기대를 저버리고 불경한 답이 튀어나왔다. "암 정복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암이 해결되면, 그 다음엔 치매로 죽을 운명인걸요."

우리 모두는 죽을 운명이다, 생로병사의 진리가 불변인 한. 문제를 하나 해결하면 더 큰 문제가 우리를 기다린다. 당연하다. 우리는 해결가능한 문제를 해결할 뿐, 남는 것은 점점 더 어려운 문제다.

치매는 뇌가 줄어드는 병이지만, 그 다음엔 뼈도 사라지고, 마침내 살과 근육마저 소멸된다. 예전엔 이름도 없던 병들이다. 의료는 바로 자기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무한산업이다. 소멸 없는 영원한 시장이다. 삶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여 '혁신의 딜레마'조차 없는 '무한혁신 시장'이다. 클레이턴 크리스텐슨이 말하는 '혁신의 딜레마'는 어떤 제품이 이미 '충분히 쓸 만하면(Good enough)' 소비자가 현 제품에 만족하고, 더 이상의 혁신에 지불할 의사가 없어서 시장이 멈춰버리는 현상이다. 오늘날 거의 모든 산업의 가장 깊은 고민이다. 의료엔 이 혁신의 딜레마가 없다.

'오디세이'는 서양문명의 '놀라운 외부세계를 탐험하는 경험 가득한 긴 여정'을 상징한다. 3000년 전 트로이 전쟁에서의 귀환을 노래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또한 4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길가메시'의 긴 여정에 근원한다.

'오디세이'는 '대항해 시대'를 통한 아메리카 발견과 '희망봉'을 통한 아시아 침탈로 이어진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SF 문제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서양문명에 각인된 미지세계 탐험이 더 갈 곳 없는 지구를 넘어 우주로 향할 것임을 예언했다. 하지만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서양문명은 '인간의 지능'이라는 우리의 내면세계로의 출범을 선포했다.

알파고는 동양의 신비라던 바둑에 대한 믿음을 파괴했고, 이세돌 9단을 '인류 최후의 승자'로 새겼다. 인간 내면을 향한 '지능 오디세이 2016'호의 돛이 높이 올려졌다.

다음 여행지는 일론 머스크가 꿈꾸는 우주공간보다 우리들 자신이다. 혁신의 가치가 무한하기 때문이다. 무수히 다양하고, 영원히 이어지며, 무한혁신을 수용하는 매력적인 시장인 의료를 향한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연합군이 '헬스케어 오디세이 2042'호를 출범했다.

굴지의 제약사와 생명공학사들이 승선했다. 아마존의 의약품 배송에 위기를 느낀 CVS는 보험사 애트나를 합병했고 유통사와 헬스케어시스템들도 속속 합류 중이다. FDA는 항행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규제개선을 약속했다. 항해 왕 엔히크가 교황 마르티누스 5세에게 "앞으로 인도까지의 구간과 인도에서 발견되는 모든 토지를 포르투갈령으로 한다"는 내락을 얻었던 때처럼.

막강한 사라센 제국은 뱃길로 우회했다. 중국에서 온 나침반은 위치에 따른 편차가 있었다. '아스트롤라베'로 별의 각도를 재서 정확한 방향과 위도를 측정했다.

범선이 역풍에도 전진할 수 있는 (동양에는 이미 있었던) 세로돛이 고안됐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는 의사의 전문성을 파괴하고, 첨단 생명공학은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며, 스마트폰과 유전자 정보는 소비자 참여 의료라는 새 패러다임을 열고 있다.

의료가 더 이상 전문 자격증과 규제의 보호막 속에서 안전할 수 없는 이유다. 항해를 통해 지도는 더 완벽해질 것이고, 스마트폰은 건강 안내 내비게이션을 제공할 것이다. 어차피 헬스케어는 우리 삶의 여정을 돕는 서비스 산업이다.

미지세계로의 여행은 항상 불안하다. 더구나 이번에는 목적지가 우리들 자신이고, 우리 모두가 한 배에 탔다. 생명공학이 우리의 속살을 낱낱이 해부하고, 인공지능이 우리의 정체성을 모두 해체할까 불안하다.

의료 4차 산업혁명에서 돌아와 거울 속 낯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미래의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집으로 돌아와 '죽음의 운명'을 받아들인 4000년 전 길가메시의 질문에 신은 답한다. "별것 없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좋은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하라."

[김주한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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