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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숙청으로 권력을 잡은 김정일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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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 자신이 처벌했던 부서가

16년 지나 자신에게 칼을 들이대

처형된 지 4년 지났지만 숙청은 계속

김정은, 황병서·김원홍 처벌로 군부 장악

김정일과 권력 장악 과정과 비슷

갑산파·김동규·심화조 사건 등으로

반대세력 숙청하고 권력 안정화

북한 최고지도자는 숙청으로 권력을 장악했다. 세습에 따른 취약할 수 있는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해 조금이라도 견제가 될 만한 세력을 제거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2012년 권력을 잡은 뒤 그해 7월 이영호 총참모장을 숙청하면서 평양에 ‘숙청의 바람’을 몰아쳤다. 이듬해는 그의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처형시킴으로써 그에게 ‘딴 마음’을 먹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급기야 지난 2월 김정은에게 골칫거리였던 이복형 김정남마저 암살했다. 김정은은 ‘어리다’ ‘경험이 부족하다’ 등 세간의 평가를 숙청으로 불식시켰다. 공교롭게도 이영호·장성택·김정남은 친중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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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철(사진 왼쪽) 인민무력부장이 2015년 4월 인민군 훈련일꾼대회에서 조는 모습. 국가정보원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조는 불충 등을 현 부장의 숙청 이유로 꼽았다. 가운데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노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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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잠재적인 도전세력인 군부를 잦은 인사와 깜짝 인사와 흔들어 놓았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과 변인선 총참모부 작전국장 처형을 통해 군부를 휘어잡았다. 최근에는 한때 ‘2인자’ 역할을 했던 황병서 군 총치국장과 ‘저승사자’로 악역을 했던 김원홍 총정치국 제1부국장 등을 처벌함으로써 ‘군기’를 확실히 잡았다.

김정은의 이런 권력 장악은 아버지 김정일과 비슷하다. 김정일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숙청을 단행했다.

첫째로 67년 5월 ‘갑산파 반당 사건’이다. 갑산파는 박금철을 중심으로 정치세력화된 양강도 갑산 지역 출신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김일성의 유일사상체계에 도전했다가 당시 25세밖에 안 된 김정일에 의해 숙청됐다. 숙청된 갑산파는 박금철 노동당 부위원장, 이효순 대남 총책, 김도만 당 선전선동부장 등 당의 요직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정일은 김일성의 인정을 받아 후계자 반열에 올라섰다.

둘째로 76년 6월 ‘김동규 사건’이다.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일의 독주를 견제하려던 김동규 국가 부주석이 오히려 당한 케이스다. 김일성과 함께 항일 빨치산 활동을 했던 지경수 당 검열위원장, 지병학 인민무력부 부부장, 이용무 총정치국장 등이 김동규에게 동조하면서 함께 숙청됐다. 주동자 김동규는 함경남도 부전군의 산간 지역에 감금됐고 지경수·지병학은 가혹한 추궁을 받다가 차례로 사망했다. 김일성은 항일 빨치산 출신들이 숙청되자 김정일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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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장성택 처형을 논의한 ‘삼지연 8인 그룹’. 왼쪽부터 한광상 군 중장,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김병호 선전선동부 부부장,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김정은, 현지 관계자, 김원홍 당시 국가보위상. [사진 노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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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 97년 ‘심화조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김일성의 노간부를 중심으로 3000여 명이 처형됐고 1만 명 이상의 연고자가 수용소로 끌려갔다. 대표적 숙청 인사는 서관희 농업담당 비서, 문성술 조직지도부 본부당 책임비서, 서윤석 평안남도 당위원장 등이다. 심화조는 김정일이 간첩 색출을 위해 “주민등록 조사를 심화하라”고 내린 문구를 그대로 사용한 데서 따온 것이다. 심화조 사건 수사의 발기자는 장성택이었고, 행동대장은 채문덕 사회안전부(현 인민보안성) 정치국장이었다. 그들에게 칼자루를 쥐여 준 사람은 김정일이었다.

장성택의 타깃은 문성술이었다. 문성술은 김일성의 유일사상체계와 김정일의 계승 문제를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에 김정일의 친인척들 가운데 권력 지향성이 가장 큰 장성택을 철저히 감시·견제했다. 아울러 그의 비리를 김일성·김정일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따라서 두 사람은 원수지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문성술은 신문 중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구타를 당했으며, 스스로 독방 벽에 머리를 찧어 자살했다. 문성술이 맡은 본부당은 노동당의 최고 실세 부서인 조직지도부의 핵심으로 중앙당 모든 간부의 당 조직생활을 지도했다. 이 악연은 결국 2013년 12월 장성택의 운명을 재촉하게 됐다. 그를 내사한 곳이 본부당이었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일로부터 물려받은 성격과 통치술이 오늘의 김정은을 만들었고, 그런 김정은이 ‘선군’ 지도자를 계승했다는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김정은은 대내적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군대를 통제하며 대외적으로 주변국들에 안보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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