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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발목 연골이 녹았다는데… 무대선 또 발이 움직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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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걸·김지영 무용 인생 고백

예술의전당서 '댄서하우스'

20년 만에 '백조의 호수' 선보여

11~12일엔 최수진·김남건 공연

"저는 왼쪽 발목을 잘 쓰지 못합니다. 왼발로는 힘주고 서 있기도 어려워요. 하지만 춤추고 싶습니다."

7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댄서하우스' 무대에 선 김용걸(44)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그의 손을 김지영(39)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가 가볍게 잡는다. 카운터테너 이희상의 목소리와 라이브 피아노 반주가 이 커플의 움직임과 어우러졌다. 어둡고 작은 공간을 세심하게 채웠다.

김용걸이 선보인 안무 이름은 '여정'. 지난 2000년 국내 무용수 중 처음으로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성했지만 원하는 무대에 마음껏 설 수는 없었다. 부상까지 겹쳐 무대를 바라보기만 했던 그 시절 김용걸은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고 했다. 주인공(김지영)을 막아서기도 하고, 마치 인형처럼 조종하기도 하고, 전진하라고 뒤에서 밀어주기도 하는 미스터리한 존재(김용걸). 내 뜻대로 되는 듯하다가도 되는 일 하나 없는 우리 인생이 짧은 무용 한 편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발목 연골이 녹아 없어졌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젊을 때 무지막지하게 운동한 덕에 이름이 알려졌지만 그 때문에 몸도 빨리 부서졌어요. 신기한 건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인데 무대에 서면 발이 또 움직인다는 거죠."

조선일보

8일‘댄서하우스’공연에 듀오로 나선 무용수 김용걸과 김지영. 무대에선 화려하게만 보이는 무용수들의 고달픈 이면을 영상과 대화로 보여줬다. /국립현대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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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몸으로 쓰는 자서전'이었다. 김용걸·김지영 듀오는 화려해 보이는 무용수들이 겪는 고통과 갈등, 외로움에 솔직했다. 완벽한 우아를 유지하기 위해 물 아래에선 끊임없이 물질을 해야 하는 백조. 소극장은 그들의 거친 호흡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허리 부상에 힘들어하던 김지영은 연습 도중 "어이구야"하며 터지는 외마디 비명을 일부러 감추지 않았다. 이들의 공연은 8일로 끝났고 9~10일은 배우 한예리와 성창용이, 11~12일에는 현대무용가 최수진과 김남건이 말하는 무용 인생이 펼쳐진다.

김용걸·김지영이 국립발레단에서 처음 만난 건 1997년. 당시 발레단 간판 무용수였던 김용걸과 러시아 명문 바가노바 발레아카데미 출신으로 열아홉에 국립발레단 최연소 입단한 김지영은 이듬해 파리국제무용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듀엣 1위를 차지하는 등 '환상의 커플'이었다. 국립발레단 초대 단장인 임성남(1929~2002)이 둘을 가르치던 20년 전의 풋풋한 영상이 현재와 교차 편집됐다. 그때 호흡을 맞췄던 '백조의 호수' 일부분이 공연의 시작이었다. 짧은 공연 사이에 자신의 이야기를 넣었는데 어찌나 달변인지 토크 쇼의 한 장면 같았다.

피날레는 역시 김용걸이 안무한 '산책'. 오랜 인생의 동반자가 서로를 지켜주듯 따뜻한 감정으로 가득했다. 사랑스러운 동작들로 꾸몄지만 주제는 '배신'. 김지영은 "잘 길들여 놓은 토슈즈가 갑자기 무대 오르기 전 몸을 배신할 때가 있다"며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을 우회적으로 설명했다. 배신은 외로움으로 이어진다. 김지영이 말한다. "예전 선배가 집에 혼자 갈 때 터덜터덜 대던 자기의 구두 소리가 그렇게 외롭게 들릴 수가 없다 했는데 그걸 이제야 알겠더라고요. 무용수의 하루일과는 외롭고 힘들고, 매순간 자기와 싸우면서 견디는 것이라는 걸." 김용걸은 "은퇴란 얘기를 꺼낸 적도 없는데 2009년 파리에서 돌아왔더니 '은퇴'라는 기사가 올라와 당황했었다"며 "무용수인 듯 아닌 듯한 존재로 무대에 서는 난처함과 멋쩍음이 나를 가장 외롭게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무대로 다시 향했다. "이 희열. 춤은 마약 같아서 끊을 수가 없어요." 김용걸은 '댄서하우스' 공연을 마치자마자 9일 예술의전당이 올린 오페라 '투란도트' 1막에서 탄탄한 근육질 몸매로 무대를 누비며 '사형집행관'의 카리스마를 자랑했다. 무용수의 정년이라는 마흔의 나이를 무색하게 한다. 무대에 설 수 있는 한 은퇴는 없다고 웅변하듯.

[최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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