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태정 내셔널 부데스크 |
포항은 군대 생활을 했던 곳이라 지난해 경주 지진보다 관심이 더 갔다. 포항 지진(규모 5.4)은 경주(5.8)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이재민(1797명)은 16배, 재산피해(551억원)는 5배 많았다. 경주보다 진원이 얕고 사람이 많이 사는 곳에서 발생한 영향이 크지만, 건물의 부실함도 한몫했다.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소속 전문가들이 지진으로 피해를 본 포항 D아파트를 점검해 봤더니 일부 건물엔 있어야 할 철근이 없었다. 1층을 주차장으로 쓰기 위해 비운 필로티 건물의 기둥이 엿가락처럼 휜 것도 부실시공 탓이 크다. 그런 건물을 많은 사람이 보금자리라고 믿고 살았다.
낚싯배 사고 대응 과정도 되짚어보면 해경을 믿을 수 있겠나 싶다. 신속히 출동해야 하는데 고속단정이 없어 육지로 이동해 항구로 간 뒤 민간 어선을 타고 현장에 가는 모습도 연출됐다. 출동시간을 둘러싼 말 바꾸기, 일부 구조대원의 미숙한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서로 믿을 수 없어 안전장치를 만드느라 비용·시간이 들어가는 건 사업계약서 작성 때만이 아니다. 부산시는 최근 필로티 구조의 건물을 지을 때 내진설계 확인 절차를 대폭 강화한다고 밝혔다. 지진 때 필로티 건물 기둥이 엿가락처럼 휜 것을 봐서다. 철근 공사 때 반드시 감리자의 입회 아래 동영상을 촬영해 제출하도록 했다. 이게 다 돈이다. 지방자치단체로선 관리·감독에 예전보다 더 많은 인력과 돈을 써야 하고 건물주도 마찬가지다.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은 낚시 전용배 도입을 검토하고 승선 정원 감축 등 낚시어선 안전 관련 규정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했다. 좋게 말해 안전 강화지 낚싯배 주인을 믿지 못하니 규제하겠다는 건데 비용과 시간이 더 들어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90년대 중반 신뢰(trust)를 번영의 요건으로 꼽았다. 공동체 구성원 간에 상대방이 규범에 기초해 정직하고 협동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은 나라는 잘살고, 그렇지 않은 나라는 잘살기 힘들다는 거다. 신뢰가 높은 나라로 미국·일본, 낮은 나라로 중국· 한국 등이 꼽혔다. 90년대 나온 건데 요즘도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대한상의가 지난해 낸 ‘한국의 사회적 자본 축적 실태와 대응과제 연구’를 보면 ‘우리나라의 신뢰·규범·사회 네트워크 등 3대 사회적 자본은 국제사회에서 바닥 수준’이다. 국민소득 3만 달러 달성도 중요하지만 신뢰 같은 사회적 자본 확충 없이 선진국은 아직 먼 얘기다.
염태정 내셔널 부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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