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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사설] 이영렬 前지검장 무죄판결이 보여준 김영란법의 무리한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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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지난 8일 법원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기소 당시부터 무리한 법 적용이라는 지적이 있었는데 결국 그 지적대로 됐다. 이 전 지검장은 지난 4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 그리고 법무부 검찰국 간부들과 식사 자리를 가졌다. 이 전 지검장은 1인당 9만5000원 상당의 저녁 식사 비용을 계산하고 검찰국 과장 2명에게 100만원씩 격려금을 건넸다. 이 사실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고 검찰 특수활동비에서 비용이 지출된 사실이 특히 문제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감찰을 지시했고 이 전 지검장은 면직됐다. 검찰은 식사와 격려금을 합쳐 1회에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 제공이 있었다고 보고 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이 전 지검장을 기소했다.

법원은 그러나 식대와 격려금을 따로따로 판단했다. 김영란법은 상급 공직자가 위로 등 목적으로 하급 공직자에게 제공한 금품은 처벌 예외 대상으로 규정하는데 식대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검찰은 서울중앙지검장이 상급기관인 법무부 소속 간부에게 밥을 산 것은 김영란법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일선 검찰과 법무부 파견 검사를 상하기관으로 보는 것이 얼마나 무리한 주장인지 잘 안다. 검찰은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동일체 조직이다. 법무부와 검찰은 수시로 인사교류를 하며 직급·기수별로 엄격한 상하관계가 존재하고 검찰과 법무부의 구분이 없다. 법무부 과장들에게 이 전 지검장은 조직의 까마득한 상사였던 것이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검찰은 이 전 지검장을 기소하고 법원은 '말이 안 된다'고 판단했으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검찰 특수활동비에 대한 이중 잣대도 문제다. 이 사건이 불거졌을 때 여권을 중심으로 "특활비가 자기들끼리 밥 먹고 용돈 주라고 있는 돈이냐"며 굉장한 성토가 있었다. '적폐' 얘기도 나왔다. 그런데 최근 "국가정보원 특활비의 청와대 제공은 문제가 되고, 검찰 특활비 법무부 제공은 문제가 안 되느냐"는 반론에 직면해선 "법무부로 건너가는 특활비는 국가예산 범위 내에 있어서 문제없다"고 주장한다. 법무부가 쓰는 그 특활비는 과연 밥 먹고 용돈 주는 데 쓰이지 않았을까. 이쯤 되면 이 전 지검장 면직 처분의 정당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누가 왜 그의 옷을 벗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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