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6 (일)

[friday] 윤동주·이상·김환기… 창작의 숨결 따라 서울을 걷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예술가의 공간]

예술인이 사랑한 성북동

시민이 지킨 '최순우 옛집'… 근대 서울의 한옥미 담겨

찻집이 된 이태준 고택… 한용운·조지훈 살던 곳도

쇼핑과 맛집이 즐비한 서울에도 예술인의 흔적 따라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곳이 있다. 고층 건물이 들어서며 모습을 바꿔나가는 도심에서 오뚝이처럼 예술인들의 발자취를 지켜내는 곳들이다. 서울 토박이도 안 가봤을 법한 예술인의 터전이다. 예술가들이 살던 시대를 상상하며, 이들과 함께 서울 여행을 떠나보자.

조선일보

ㅁ’자 구조의 ‘최순우옛집’.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붕 없는 박물관, 성북동

성 밖 북쪽 마을이란 뜻의 성북동은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지금은 대사관저 들어선 부촌이 돼버렸지만, 과거엔 예술인들이 사랑하던 동네였다. 작곡가 윤이상, 시인 김광섭, 소설가 이태준 등 유명인이 시내 중심지 가까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세월이 흐르며 시대를 주름잡던 예술인들은 모두 떠났지만, 여전히 그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최순우 옛집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이자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인 최순우(1916~1984)가 1976년부터 작고할 때까지 살던 집이다. 2002년 성북동 재개발로 사라질 뻔했지만, 시민이 힘을 모아 모금 운동을 한 덕에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서울시 등록 사립박물관 제29호이자 '시민문화유산 1호'다. 근대 서울·경기 지역 한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조선일보

최순우가 생전 사용했던 물건들과 사용했을 법한 물품으로 채워진 ‘최순우 옛집’ 사랑방.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집은 'ㄱ'자형 본채와 'ㄴ'자형 바깥채가 마주 보고 있는 튼 'ㅁ'자형 구조로 이뤄져 있다. 집의 정중앙과 뒷마당에는 정원이 있는데, 향나무·모과나무·모란 등의 꽃과 나무들은 최순우가 직접 심고 가꾼 것이라고 한다. 툇마루에 앉아 정원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사랑방은 최순우가 살아있을 당시 썼던 물건들과 지인들이 기억하는 물품으로 재현해 놨다. 일·월요일, 12~3월 휴관, 무료. (02)3675-3401

수연산방(壽硯山房)은 소설 '황진이'를 쓴 월북 작가 상허 이태준(1904~?)이 1933년에 집을 지어 1946년까지 살던 고택으로, 현재는 이태준 누나의 큰딸이 전통 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수연산방'이란 산속에 문인들이 모이는 집이라는 뜻. 이태준은 이곳에서 '달밤' '돌다리' '코스모스 피는 정원' 등을 집필했다. 곳곳에 이태준의 흔적이 남아있다. 대청마루엔 1941년도에 찍은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 이태준과 함께 구인회 활동을 하던 김유정, 정지용 등이 이곳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걸쭉한 대추차가 유명하다. 월요일 휴무. (02)764-1736

이 외에도 만해 한용운이 말년을 보냈던 심우장, 시인 조지훈의 집터와 기념 건축물인 '시인의 방, 방우산장',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임시 휴관 중) 등이 있다.
조선일보

3 파란색 문이 돋보이는 원서동 고희동 가옥 / 4 고희동 가옥에 재현된 고희동의 화실 / 5 환기미술관 강의동인 ‘수향산방’에 재현된 김환기의 뉴욕 스튜디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화가의 동네, 북촌과 서촌

경복궁을 바라보며 왼쪽은 서촌, 오른쪽은 북촌으로 나뉜다. '요즘 뜨는 곳' '한옥마을' 등 관광지로 소문을 타고 있지만, 알고 보면 이곳에도 예술가의 터전이 남아있다. 창덕궁 담벼락을 따라 원서동 길을 걸어 올라가면 붉은색 돌담에 파란 대문 집이 나온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인 춘곡 고희동(1886~1965) 화백이 41년간 살았던 가옥이다. 고희동 가옥이라 부른다. 직접 설계한 한옥에서 고희동은 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각계각층의 지인들과 교류하며 지냈다고 한다. 사랑방과 화실은 고희동이 활동했던 시기의 모습으로 재현돼 있다. 한 명만 지나갈 수 있는 복도를 거닐며 곳곳에 걸린 그의 작품, 신문·사진 등의 자료를 구경하다 보면 어디선가 고희동이 뒷짐을 진 채 방에서 나올 것만 같다. 월·화 휴관, 무료. (02)2148-4165

조선일보

박노수 화백이 2011년 말까지 거주했던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 내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고희동 가옥과는 반대로 옥인동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은 절충식 기법으로 지어진 가옥이다. 2011년 말까지 남정 박노수 화백이 거주한 곳으로, 붉은색 벽돌집과 화백의 손이 닿은 정원의 꽃과 나무가 조화를 이룬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집 안을 거닐 때마다 나무 바닥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각 전시실의 이름이 거실, 안방, 주방 등으로 돼 있는데, 이는 화백이 사용하던 방의 용도를 알려주기 위함이다. 70년대 목욕탕도, 그 시절 3대의 벽난로도 그대로 남아있다. 집이 곧 미술관인 만큼 집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래된 문학 책과 위촉장부터 80년대 스케치, 회화 작품 '수목방성'(1974), '장생'(1974) 등이 전시돼 있다. 미술관은 서울시 문화재자료 1호로 등록돼 있다. 입장료를 받는다. 월요일 휴무, 어른 3000원·어린이 1200원. (02)2148-4171

미술관에서 나와 통의동 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오감도'와 '날개'를 쓴 문학가 이상(李箱·1910~1937)이 살았던 집을 개조한 이상의 집이 나온다. 그와 관련된 책을 읽을 수 있으며, 뒤편 철문을 밀면 관련 영상을 볼 수 있는 '이상의 방'이 나온다. 무료. 070-8837-8374
조선일보

서울 청운동 윤동주문학관의 ‘닫힌 우물’ 전시실. 천장의 작은 구멍으로 빛이 들어온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예술가의 기념관이 모인 곳, 부암동

북악산을 따라 올라가면 예술인이 살던 곳은 아니지만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장소들이 나온다. 부암동에 있는 환기미술관은 최근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한국의 대표 작가 김환기(1913~1974) 화백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화백의 부인인 김향안 여사가 김환기 화백을 기리기 위해 1992년에 설립한 미술관으로, 건축가 우규승이 설계해 1994년에 '김수근건축상'을 수상했다. 김환기를 기리기 위한 미술관으로, 기획전을 통해 다양한 그의 작품을 소개한다. 강의동인 '수향산방'은 성북동 자택의 이름을 본떠 붙였다. 작품 외에도 미술관 정원과 야외 공간에도 다양한 조각품이 전시돼 있다. 월요일 휴관, 입장료는 성인 1만원·학생 5000원. (02)391-7701

조선일보

용도 폐기된 물탱크를 개조해 만든 윤동주문학관의 ‘열린 우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근처 청운동 윤동주문학관은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만든 곳이다. 건축가 이소진이 설계해 2014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받았다. 제1전시실에선 시인 윤동주가 즐겨 보던 책들의 표지, 관련 출판물, 생애가 정리된 자료가 진열돼 있다. 하이라이트는 제2전시실.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에서 영감을 얻어 용도 폐기된 물탱크의 윗부분을 개방하고 '열린 우물'이라 명명했다. 붉은색이 남아있는 벽은 물이 채워져 있던 흔적을 보여준다. 이곳에 서서 바라보는 시간대별 하늘의 변화는 한 폭의 수채화다. 제3전시실인 '닫힌 우물'에선 영상물을 볼 수 있다. 하늘의 수채화를 바라본 뒤 어두운 우물 안에서 울려 퍼지는 윤동주의 서시를 들으며 시간 여행을 마무리해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월요일 휴무, 무료. (02)2148-4175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유진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