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최신혜 기자 shchoi@newsway.co.kr |
[뉴스웨이 이지영 기자]재벌들의 적폐를 소재로 그린 영화 ‘베테랑’은 관객의 분노를 자극시키며 1300만이라는 흥행 성적을 거뒀다. 이 영화는 기업 재벌 2세의 안하무인 행태를 주제로 재벌들의 실상을 현실감 있게 담아냈다.
한화그룹의 오너가 실상을 들여다보면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삶이 허구적 상상력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 김동선 한화건설 팀장은 잊을만 하면 한 번 씩 세상에 등장하는 이슈 메이커다. 문제가 됐던 김 팀장의 탈선 행동은 벌써 수 차례 도마에 올랐다. 최근에도 만취 폭언·폭행 난동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법적 처벌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같은 실수를 저질러 한화그룹 이미지를 떨어뜨렸다.
한화그룹의 면세점 사업이 부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갤러리아면세점63의 경우 김승연 회장이 사활을 걸고 추진했던 작품이다. “성장 한계에 이른 백화점 만으로는 유통 강자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하던 김 회장은 신성장동력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면세점을 꼽았고, 중국 관광객이 몰려드는 서울 지역 사업권 취득에 총력을 다했다.
당시 한화의 면세점 사업은 재계에서도 크게 주목을 받았다. 김 회장의 3남인 김동선 팀장이 면세점 태크스포스(TF) 팀원으로 합류하고 그룹 신사업 업무에 뛰어들며 경영능력을 시험받는 무대였기 때문이다.
김 팀장은 TF팀에 합류하기 전 이미 한화건설 소속이었지만 공식 석상에 첫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때였다. 당시 재계에서는 김 팀장이 면세점 TF에 참여한 만큼 전체 그룹 사업 중에서 건설 부문과 함께 그룹의 신성장동력인 유통 부문까지 승계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후발주자로 신규 진입한 면세점 사업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면세 사업 노하우가 없는 탓에 외국인 관광객 유치가 쉽지 않은데다 사드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으로 ‘한한령(한국 방한 금지령)’ 여파까지 겹쳐 심각한 경영난이 시작됐다.
실제 면세점 운영법인인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는 지난해 매출 2848억에 영업손실 123억원으로 적자전환했다. 면세점사업에서만 438억원의 손실를 내며 백화점사업에서 거둔 영업이익을 다 까먹은 것. 이같은 영업적자는 한화가 대전 동양백화점을 인수한 이후 처음이다. 한화그룹은 1976년 설립된 동양백화점(옛 국종산업사)를 인수한 뒤 상호명을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로 바꿨다.
중국 단체관광객이 증발한 올해 실적은 더욱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1분기 제주 면세점과 서울 면세점이 각각 26억원, 1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2분기도 각각 53억원(제주), 97억원(서울)의 손실을 봤으며 3분기 역시 29억원(제주), 79억원(서울) 씩 적자를 기록했다.
신규 사업자들이 다같이 겪는 경영난이었다. 그러나 더 큰 위기는 면세점 사업의 중심에 있던 김 팀장이 일선에서 물러나면서부터 시작됐다. 김 팀장이 계속된 탈선 행위에 따른 법적 처벌이 내려진 후 모든 업무에서 손을 떼고 직위를 내려놨기 때문이다. 사업을 멀리 내다보고 이끌어나갈 오너가의 핵심이 빠지면서 한화 면세점은 당장 실적 회복에만 매달리기 시작했다. 손실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업계에서는 한화갤러리아는 제주공항 면세점 특허권 조기 반납이라는 사상 초유의 결정도 이 영향 탓이라는 시각이다. 제주공항 면세점은 다음달까지만 운영한다.
한화가 제주공항 면세 사업권을 내놓자 롯데 신세계 신라 등 면세업계 톱 3사는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어 입찰에 참여했다. 한국공항공사는 한화의 사업권 반납의 결정적 이유인 임대료 부담을 완화시키기 위해 조치를 취했다.기존 최소보장금액을 기준으로 사업자를 선정하던 것에서 기본 임대료를 포함해 매출 연동 방식으로 임대료를 내는 최소영업요율(20.4%) 방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이 방식에 따르면 매출 규모에 따라 임대료가 올라가거나 내려갈 수 있다.
면세점 업계에서는 공항 면제 사업권을 포기한 한화갤러리아의 결정을 두고 '치명적인 오판'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면세점 사업에 뒤늦게 진입해 여행사 유치가 쉽지 않은 한화갤러리아로서는 공항 면세점 사업권을 어떻게든 꼭 쥐고 있어야 했다는 설명이다.
면세업계 한 관계자는 “면세 사업을 책임질 오너의 자제가 발을 빼자 한화갤러리아가 멀리 보지 못하고 당장 손실 회복에만 급급해 섣부른 판단을 한 것 같다”면서 “한중관계가 풀릴 조짐이 보이고 있는데 내달 방을 빼줘야 하는 한화 입장에서는 중국 관광객이 몰리는 황금 사업장 하나를 자발적으로 경쟁사에 내 준 꼴”이라고 말했다.
이어 또 다른 관계자는 "면세 사업은 단판 승부가 아닌 호흡을 길게 가지고 가야 할 사업이라 브랜드유치와 영업 인프라, 여행사 유치 노하우 등 기초적인 여건을 다지면서 시간을 갖고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한다"며 "그래서 당장 눈에 보이는 실적에 연연하지 않는 오너 경영이 중요한데 이제 면세 사업에 첫 발을 내딛은 한화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느낌이다"고 강조헀다.
이지영 기자 dw0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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