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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르포]"모범으로 오리 길렀는디 어쩐디야" AI 확진 고창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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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성 강한 H5N6형 확진…지난 겨울과 동일

정부, 이틀간 전국 닭·오리 일시이동중지 명령

해당 마을, 외부와 24시간 출입 통제 '격리조치'

주민들 "마을에 몹쓸 병 생겼다" 초상집 분위기

농가 인근 '철새도래지' 동림저수지 방역 강화

22일부터 탐조객 출입 금지…수렵장도 폐쇄

인근 상가도 "탐조객 끊기면 매출 타격" 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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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원성 AI가 확진된 전북 고창군 흥덕면 복룡마을 입구에서 방역요원들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고창=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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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차량은 못 들어간다니까요?"

20일 오전 10시 전북 고창군 흥덕면 복룡마을. 방역복을 입은 남성 2명이 마을 안으로 들어가려는 승용차 한 대를 가로막았다. 고창군 소속 요양보호사 서모(61·여)씨가 탄 차였다. 서씨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마을에 사는 조모(82·여) 할머니를 돌보러 가야 한다"고 설명했지만 소용 없었다. 결국 서씨는 5분이 넘는 승강이 끝에 통제초소 부근에 차량을 두고 소독까지 마친 뒤에야 걸어서 마을로 갈 수 있었다.

이곳은 전날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확진된 오리 농가가 있는 마을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18일 해당 농가에서 검출된 AI 항원을 검사한 결과 전염성이 강한 H5N6형으로 나타났다. 지난겨울 전국에 창궐해 사상 최대 피해(3700만 마리 살처분)를 입힌 바이러스와 같은 유형이다. 올겨울 들어 국내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첫 사례다. 최근 철새 분변 등 야생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된 적은 있지만 모두 저병원성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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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원성 AI가 확진된 전북 고창군 흥덕면 복룡마을 입구. 고창=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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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원성 AI가 확진된 전북 고창군 흥덕면 복룡마을 입구. 고창=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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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AI 위기 경보를 '주의'에서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올리고, 20일 0시부터 48시간 동안 전국의 모든 닭·오리 농가와 차량에 대해 '이동 중지 명령(스탠드 스틸·Stand still)'을 내렸다. 앞서 해당 농가에서 키우던 오리 1만2000여 마리는 모두 살처분됐다.

이날 AI가 발생한 오리 농가로 들어가는 마을 입구 두 곳은 외부인 및 차량의 출입이 통제됐다. 길 곳곳에는 소독용 생석회가 뿌려져 있었다. 비슷한 시각 농림축산검역본부 소속 직원 3명이 AI가 확진된 농가로 향했다. 선임으로 보이는 한 직원은 취재진에게 "살처분 후 사후 조치가 잘 됐는지 점검하기 위해 왔다"고 말한 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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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군 공무원들이 지난 18일 AI 항원이 검출된 농가에서 오리들을 예방적 살처분하고 있다. [사진 고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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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초소 앞을 지키고 있던 김경만(77)씨는 "주민 2명이 임시 사역으로 하루 8시간씩 3교대로 마을 앞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복룡마을에는 20여 가구, 주민 50여 명이 모여 산다. 이번 AI 발생으로 8가구, 10여 명이 격리됐다. 마을 주민 대부분은 60대 이상 농민으로 벼와 고추·담배 등을 재배한다. 해당 농가 외에 가금류 농가는 없고, 한우 농가만 2곳 있다고 한다. 김씨는 "마을에 몹쓸 병이 생겨 걱정이 크다"고 했다.

고창군에 따르면 AI가 발생한 농가 반경 500m 안에는 가금류 농가가 없다. 방역대 10㎞ 안에는 70개 농가에서 닭·오리 247만 마리를 키우고 있다. 전북도는 고창과 정읍·부안에 있는 이들 가금류의 이동을 30일간 제한했다. 고창군 수렵장 운영도 21일부터 전면 중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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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원성 AI가 확진된 오리 농가 인근에 있는 &#39;철새도래지&#39; 동림저수지 모습. 고창=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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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룡마을 전체는 AI 확진 소식에 초상집 분위기다. 초소 인근 집 마당에서 파를 다듬던 김정례(82·여)씨는 "그동안 딴 데는 다 (AI에) 걸려도 생전 그 사람(해당 농장주)은 안 걸렸는데 어쩐 일이디야. 모범으로 (오리를) 키우던 사람인데 큰일 났네"라며 안타까워했다. 김씨는 "작년부터 노상(늘) 마을로 덤프트럭이 드나들었는데 그것 때문에 그게(AI) 들어온 게 아니냐"고도 했다. 고창군은 지난해부터 재해 위험을 막기 위해 '복룡소하천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AI 확진 농가를 직접 관할하는 전북도와 고창군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새다. AI 발생 농가에서 250m 떨어진 곳에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동림저수지가 있어서다. 고창군 흥덕면과 성내면 일대에 걸쳐 있는 동림저수지의 면적은 3.82㎢에 달한다. 해마다 12월~2월 가창오리와 청둥오리·물닭·흰뺨검둥오리 등 철새 20여만 마리가 동림저수지에서 겨울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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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원성 AI가 확진된 오리 농가 인근에 있는 &#39;철새도래지&#39; 동림저수지 모습. 물닭·청둥오리로 추정되는 철새들이 물 위에서 무리를 지어 다니고 있다. 고창=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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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원성 AI가 확진된 오리 농가 인근에 있는 &#39;철새도래지&#39; 동림저수지 모습. 물닭·청둥오리로 추정되는 철새들이 물 위에서 무리를 지어 다니고 있다. 고창=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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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원성 AI가 확진된 오리 농가 인근에 있는 &#39;철새도래지&#39; 동림저수지 모습. 물닭·청둥오리로 추정되는 철새들이 물 위에서 무리를 지어 다니고 있다. 고창=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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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철새가 본격적으로 상륙하는 시기를 앞두고 고창군은 동림저수지에 대한 예찰 및 소독을 강화하고 있다. 오는 22일부터는 저수지 주변에 3개 초소를 설치하고 각각 2명씩 인력을 배치해 철새를 보러 오는 탐조객의 출입도 통제할 방침이다.

지난 18일 고창군의 예찰 결과 동림저수지에는 현재 철새 800여 마리가 관측되고 있다. 실제 기자가 '흥덕제(제방)'가 있는 동림저수지에 가보니 물닭·청둥오리로 추정되는 철새들이 무리를 지어 물 위를 떠다녔다. 이날 저수지를 찾은 강필구 고창군 환경정책팀장은 "지금 보이는 철새들은 먼저 온 선발대와 토착화·텃새화된 철새가 섞여 있다"며 "AI 발생 전후로 이상 징후나 폐사체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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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동림저수지에 예찰을 나온 강필구 고창군 환경정책팀장이 철새들을 가리키고 있다. 고창=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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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림저수지 인근 지역에서 AI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저수지와 인접한 다른 마을 주민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석우마을 토박이'라는 김모(60)씨는 "우리 어릴 때는 이런 병(AI)이 없었는데 몇 년 전부터 이맘때면 철새가 오는 것마냥 꼭 찾아온다. 작년에도 (AI가 발생해) 마을에 초소를 설치하고 소독도 다 했는데 올해 또 터졌다"고 했다.

동림저수지 주변 상가들도 울상이다. 탐조객들의 발길이 끊기면 겨울 한철 장사를 망칠 수 있어서다. 고창군 성내면의 한 식당 주인 이모(69)씨는 "가창오리떼가 한번 날면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장관이다. 해마다 12월 말부터 2월 말까지는 주말마다 전국에서 온 탐조객들이 타고 온 차량 수백 대가 마을에 가득 찬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 동림저수지에서 AI가 터졌을 때 우리 식당뿐 아니라 주유소·숙박시설·슈퍼마켓 매출이 4분의 1로 줄었다"며 "AI 사태가 길어지면 농가도 문제지만 상가들도 타격이 크다"고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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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원성 AI가 확진된 오리 농가 인근에 있는 &#39;철새도래지&#39; 동림저수지 모습. 고창=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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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방역 당국이 AI에 대한 근본적인 예방 대책을 세우기보다 '말 없는 철새'를 발병의 주범으로 모는 분위기에 대한 불만도 나왔다. 이종철 한국조류보호협회 고창군지회장은 "개인적으로 이번 AI 발병과 철새는 큰 연관이 없어 보이는데 예방 차원에서 방역을 강화한다는데 뭐라고 하겠냐"면서도 "수년 전부터 AI가 연례행사처럼 터지는데 그럴 때마다 정부가 애꿎은 철새만 탓하는 건 너무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고창=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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