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이틀째 ‘지진 공포’
16일 오전 9시 2분 42초.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건물 전체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포항의 한 호텔 9층 방에 있던 김모 씨의 눈앞에서 천장 조명이 ‘부르르’ 떨었다. 김 씨는 “외출 준비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바닥에 주저앉았다. 벽에 걸린 액자와 천장의 조명이 떨리는 걸 보고 이러다 정말 건물이 무너지는 게 아니냐는 걱정에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진의 크기는 규모 3.6. 예정대로라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막 시작됐을 무렵이다. 밤사이 포항 시민을 불안에 떨게 한 여진은 이렇게 16일 내내 이어졌다. 오전 11시경 북구 두호동 영일대해수욕장의 음식점을 찾았다 여진에 놀라 뛰쳐나온 한 남성은 “천장이 흔들리고 바닥이 떨려서 도저히 건물 안에 있을 수 없었다. 이렇게 강한 여진이 계속되면 앞으로 생활하기가 힘들 것 같다”며 걱정스러워했다.
이날 오후 흥해실내체육관에는 이재민 700여 명이 머물고 있었다. 첫날보다 200명가량 늘었다. 집에 있던 사람들마저 여진 탓에 오히려 체육관으로 온 것이다. 체육관은 한눈에 보기에도 빽빽했다. 신발도 벗지 못한 채 쪽잠을 잔 주민들은 초긴장 상태였다. 바닥에 마이크가 떨어지는 소리에도 놀라거나 일부는 견딜 수 없다는 듯 ‘으악’ 하는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했다.
밤사이 잠을 자다 갑자기 깨어나는 사람은 부지기수였다. 극도의 긴장과 불안감 탓에 두통과 메스꺼움을 호소하는 주민들까지 나타났다. 한 여성은 “내내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다. 제발 여진이라도 좀 잦아들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모포와 세면도구가 지급됐지만 이재민이 늘면서 불편도 커지고 있다. 체육관에는 세면장이 한 곳밖에 없어서 바로 옆 읍사무소 세면장까지 줄을 서는 상황이다. 박모 씨(51·여)는 “급하게 대피소를 마련하다 보니까 그런지 제대로 씻을 수조차 없는 상황이 큰 문제다. 화장실 물은 손 씻기도 어려울 정도로 졸졸 나온다”라고 말했다.
이재민 상당수가 살던 근처 대성아파트는 1988년 지어진 낡은 건물이라 피해가 컸다. E동은 ‘피사의 탑’처럼 한쪽으로 심하게 기운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아파트 뒤쪽은 외벽이 여기저기 무너져 철골을 드러냈다. 층마다 벽이 쩍쩍 갈라져 곧 붕괴할 것 같은 모습이다. 5층에 사는 박용순 씨(65·여)는 “1988년부터 살았다. 이런 피해는 상상도 못 했다. 3층 이후부터 심하게 기울어져 올라가기 힘들어 곧장 내려와 대피했다”고 말했다.
시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망천리 마을의 낡고 오래된 주택은 대부분 피해를 입었다. 담장과 벽체 상당수가 부서져 집 안이 훤히 드러난 곳도 많았다. 돌담은 곳곳에 커다란 구멍이 생길 만큼 내려앉았다. 건물이 기울어진 탓에 창문이 닫히지 않는 집도 많았다. 대부분 노인들이라 복구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타 지역에 사는 가족들이 복구를 위해 찾아왔다가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자 발길을 돌리는 모습도 보였다. 이임선 씨(84·여)는 “어제 마을회관에서 지내고 와 보니 벽은 다 갈라져 있고 가재도구는 모두 부서져 있었다. 다리가 불편해 걷기도 힘든데 언제 이걸 복구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지진으로 주택 등 민간건물이 피해를 입었을 경우 반파 미만은 소유주가 보험 등을 통해 직접 복구해야 한다. 다만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뒤 피해 규모가 전체 50% 이상이면 특별재난지원금으로 일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주민 최모 씨(45·여)는 “4월에 전세금 1억 원을 올려서 3억 원을 주고 들어온 집이 무너질 처지에 놓였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시청과 국토해양부까지 물어봤는데 다들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다’며 나 몰라라 한다”고 말했다.
포항=장영훈 jang@donga.com·구특교 / 정성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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