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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 (일)

"사라질 줄 알았던 레코드판, 왜 많이 팔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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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의 반격' 데이비드 색스, TV조선 글로벌리더스포럼 참석]

기술 과잉 시대에 지친 현대인… 동네책방·수첩 등 아날로그 찾아

"틈새시장 거쳐 주류 시장 편입 중… 디지털과 인류의 연애는 끝나가"

"컴퓨터 같은 디지털 기기를 많이 사용하면 목이 뻐근하죠. 10년 전쯤 목에 통증을 느껴 토론토 코리아타운 한의원을 찾았어요. 침을 놓아주고 목침(木枕)을 주더군요. 디지털 사회에서 아날로그의 역할이 침술과 같습니다."

작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으로 꼽힌 '아날로그의 반격'(어크로스 刊) 저자 데이비드 색스(38)가 TV조선이 15~16일 주최하는 '글로벌리더스포럼 2017' 참석차 방한했다. 그를 13일 서울에서 만났다. 책은 레코드판, 종이 수첩, 소규모 독립서점, 폴라로이드 카메라 등 디지털 세상에서 멸종할 것으로 생각했던 물건과 산업이 부활하는 모습을 담아냈다. 색스는 캐나다 출신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뉴욕타임스, 뉴요커 등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다.

조선일보

데이비드 색스는“미래는 나무 냄새가 날 것”이라고 했다. 인공지능 시대가 와도 인류는 뒤돌아서서 나무와 종이 같은 사물을 찾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장련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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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음악에 대한 개인적 경험 덕에 아날로그 부활에 관심을 갖게 됐다. "10대 시절 MP3가 등장하면서 갖고 있던 CD 600장을 디지털로 바꿨어요. 손쉽게 언제든 들을 수 있게 됐는데도 오히려 관심이 사라졌지요." 2012년 우연히 LP를 다시 듣게 되면서 그는 디지털 음원 서비스와 작별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여럿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추적에 나섰다. 미국 LP 판매량은 2007년 99만장에서 2015년 1200만장 이상으로 늘어났다. 인터넷 유통 공룡 아마존이 장악한 미국에서 오히려 소규모 동네 서점이 늘어났다. 책은 비슷한 사례를 씨줄과 날줄로 엮는다. "디지털 기술과 현대 인류의 연애는 끝나가고 있다. 테크놀로지 과잉을 상쇄하려고 사람은 아날로그를 찾는다."

그러나 시장 중심이 여전히 디지털에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아날로그가 반격한다지만, 주류 소비 패턴과는 동떨어진 틈새시장(niche market)에 그치는 것 아닐까. 그는 실제로 영국에서는 대형 수퍼마켓 테스코에서 LP를 다시 팔기 시작했다며, 사라질 것이라고 모두가 예견했던 제품이 틈새시장을 거쳐 주류 시장으로 편입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내가 만난 문화 선도층과 실리콘밸리 기업인들은 아날로그를 '시대정신'으로 느끼고 있다"고 했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김치를 사먹는 게 편리하고 싸지만, 여전히 김장하는 걸 선호하는 한국 사회를 예로 들었다. 아날로그 선호는 '유기농' 선호와 닮았다는 뜻이다.

그래도 동네 책방은 인터넷 서점처럼 할인이 되지 않고, LP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보다 비싸다. 그는 모든 인터넷 기기 사용이 금지되는 캐나다 온타리오의 '월든 캠프'를 천국처럼 묘사한다. 이 캠프는 두 달 동안 9000캐나다달러(약 800만원)를 내야 갈 수 있다. 그는 과연 디지털은 공짜냐고 반문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은 수시로 개인 정보를 요구한다. 최신 뇌과학을 동원해 끊임없이 접속하도록 프로그램을 디자인해 삶의 질을 위협한다. 무엇이 더 값비싼 대가를 요구하는지는 판단의 문제라는 것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물건을 사는 건 허드렛일이죠. 검색하고 가격 비교하는 단순 작업이에요. 반면 현실에선 물건을 고르면서 신선한 발견을 하는 즐거움을 얻죠. 인터넷 기사와는 달리 종이 잡지를 읽다가 새로운 관심사를 찾아 나가는 것처럼요."

그가 스마트폰을 꺼냈다. 한국어로 '광장시장' '빈대떡' '육회'라고 적힌 포스트잇 사진이 나왔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한국계 교사가 꼭 먹어봐야 한다고 적어줬단다. "진짜 한국 아날로그를 느껴보고 싶네요."

[양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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