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4 (목)

비트코인 광풍… 정작 떼돈 버는 곳은 따로 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빗썸 서버가 다운된 게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올해 6월에 1500만원으로 가상 통화 투자를 시작해서 현재 250만원 남았네요."

국내 최대 가상 통화 거래소인 빗썸이 지난 12일 1시간 반가량 서버 마비로 거래가 중단돼 투자자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개설 이틀째인 13일 가입자 수 5000명을 넘은 '빗썸 서버 다운 집단 소송 모임' 카페에는 거래 중단으로 피해를 봤다는 사람들의 경험담이 쏟아졌다.

특히 거래가 중단된 시간이 공교롭게도 가상 통화의 일종인 '비트코인캐시'가 폭락하는 시점과 맞물려 피해가 더 컸다. 시가총액 면에서 3대 가상 통화인 비트코인캐시 가격은 이날 오후 4시 284만원으로 고점을 찍은 뒤 곧바로 급전직하해 오후 8시에는 133만원으로 떨어졌다. 피해자 모임 카페에는 '4시쯤 매도 버튼을 여러 번 눌렀지만 처리가 안 되고 갑자기 사이트가 다운되는 바람에 매도 시점을 놓쳐 큰 손해를 봤다'는 글이 여럿 올라왔다.

가상 통화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해킹, 서버 마비 등 가상 통화 거래소와 관련한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하지만 가상 통화 시장 자체가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거래소가 잇단 사고를 쳐도 민사소송을 제외하면 별 제재도 받지 않는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국거래소나 증권사에서 이런 사고가 났다면 벌써 여러 명 목이 날아갔을 것"이라며 "가상 통화 열풍으로 실제 돈을 버는 것은 일부 '큰손'들과 거래소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잇단 사고에도 떼돈 버는 거래소

국내 최대 가상 통화 거래소인 빗썸은 거래 규모 면에서 '전 세계 1위 거래소'라고 자랑하고 있다. 가상 통화 정보 사이트 코인힐스에 따르면 빗썸은 최근 24시간 기준 전 세계 가상 통화 거래량의 18%를 점유하고 있다. 다른 국내 거래소인 코인원과 코빗도 모두 세계 10위권을 넘나든다. 하지만 국내 가상 통화 거래소들은 창립한 지 5년이 안 된 소규모 스타트업들이다.



지난 6월에는 빗썸 고객 3만명이 이메일과 휴대전화 번호 등 개인 정보가 해킹으로 유출된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때 해킹당한 빗썸 직원은 고객 정보를 자신의 집 개인용 컴퓨터(PC)에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가상 통화 거래소인 '야피존'과 '코인이즈'도 해킹으로 각각 수십억원의 비트코인이 털렸다. 지난 12일처럼 폭증하는 거래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서버가 마비돼 거래가 중단되는 사고는 더 빈번하다.

이런 사고에도 아랑곳없이 가상 통화 거래소들은 거래량 폭증으로 대박이 났다. 가상 통화 거래소의 기본 거래 수수료는 약 0.15%로 증권사의 주식 거래 수수료에 비해 10배가량 비싸다. 특히 출금 수수료를 가상 통화로 떼기 때문에 이로 인한 수익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2일 하루 동안 빗썸에서는 6조5000억원어치의 가상 통화가 거래돼 유가증권시장의 거래 규모를 넘어섰다.

2014년 문을 연 빗썸은 첫해 매출 4000만원에 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나 2016년에는 매출 43억원에 순이익 25억원으로 증가했다. 가상 통화 시장이 급팽창한 올해는 최소 수백억원대의 이익을 올릴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빗썸은 한 구인 사이트에 자사 매출액을 833억원이라고 소개했다.

이에 따라 가상 통화 거래소의 몸값도 폭증하고 있다. 국내 3대 거래소인 코빗의 경우 지난 9월 넥슨에 인수되면서 1400억원가량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국내 가상 통화 거래 시장의 70%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빗썸은 기업 가치가 최소 4000억~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가상 통화 거래소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면서 스타트업뿐 아니라 KT를 비롯한 대기업과 외국계 회사까지 속속 진출 중이다.

"정부가 가상 통화 거래소 요건 정하고 점검해야"

금융 당국은 가상 통화를 정식 '금융상품'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거래도 민간 자율에 맡기고 있다. 가상 통화 거래소 역시 통신 판매업자로 분류돼 등록만 하면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는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규제를 하면 정부가 가상 통화를 정식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인식돼 오히려 투기를 더 부추길 수 있다”며 “그렇다고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거래소를 폐쇄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가상 통화 시장이 급팽창하고 피해자도 속출하면서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지난 9월 중국이 가상 통화 거래를 전면 금지한 이후 한국이 중국 투기꾼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이번 서버 마비 사태의 중심에는 비트코인캐시라는 가상 통화가 있는데, 중국의 채굴업자들이 중심이 돼 지난 8월 비트코인에서 떨어져 나온 가상 통화다. 그런데 전 세계 비트코인캐시 거래에서 유독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12일 가격 급등락 사태의 배후에도 중국 투기꾼들이 있다는 설이 돈다.

한국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비트코인 거래소의 보안 사고가 잦다. 2014년에는 일본 비트코인 거래소 마운트콕스가 해킹으로 4억7000만달러 규모의 손실을 보고 파산했고, 지난해 8월엔 홍콩 비트파이넥스가 대규모 사이버 공격을 당해 6500만달러어치의 비트코인을 잃고 파산했다. 이에 따라 미국 뉴욕주와 일본 등 일부 국가는 가상 통화 거래소 등록제나 인증제를 도입 중이다. 한국에서는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거래소 인가제를 시행하고 피해자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법안을 지난 8월 발의했다.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 겸 핀테크지원센터장은 “투자자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가 가상 통화 거래소의 인적·물적 요건을 정하고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가상 통화 업계도 눈앞의 이익만 따지지 말고 자율적으로 자정 작용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규민 기자(qmin@chosun.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