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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호 문화부 기자 |
자신의 특별함을 믿기가 참 쉽지 않은 시대다. 부모 세대의 고생 덕에 상대적으로 쉽게 자란 우리 세대라지만, 사회에 나올 때쯤 달라진 상황에 적잖이 당황했다. 높아진 대학 진학률과 치솟은 교육비만큼 성취의 기준은 높아졌는데, 상황은 정반대였으니 당연했다.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꼭 20년이다. 이후 역대 정부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김대중 정부(5.3%)에서 박근혜 정부(2.4%)까지 많게는 1.3%포인트, 적게는 0.8%포인트씩 꾸준히 떨어졌다. 지속적인 성장 저하는, 청년들이 끊임없이 스펙을 쌓고도 미래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로 다가왔다.
높은 성취 기준과 부박한 현실의 간극을 채운 게 헬조선 담론인데, 이마저도 결국엔 자존감을 낮춰버린다. 지난 2년간 지방에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느라 연락을 끊었던 후배가 합격 후 해준 말은 이렇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상황을 욕하다가도 결국은 부모님께 죄송하고, 친구들한테 부끄러워 연락을 끊었다. 마지막엔 내가 참 한심하게 여겨지더라.” 최근엔 남 탓이라도 했던 헬조선 담론이 ‘이생망’이라는 자포자기로 번지고 있다. ‘이번 생은 망했다’의 줄임말이다. 아들과 함께 들은 동요가 반가웠던 건 그래서였는지 모른다. 동요의 가사가 일종의 응원가처럼 다가왔으니 말이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1998년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심리학 교수 숀(로빈 윌리엄스 분)은, 영특하지만 유년기 불행으로 삐뚤어진 윌(맷 데이먼 분)에게 “결코 네 잘못이 아니다”고 위로한다. 윌은 “알고 있다”고 사뭇 냉소적으로 답하지만, 숀이 십여 차례 이 말을 거듭하자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어떠한 상황에 있든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위로의 울림이 커서였을까. 20년 전 영화의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이런 감상에 젖어 들게 한 동요를 출퇴근길 듣는 휴대전화 음악 재생목록에 추가했다. ‘완벽한 그녀에 비해 나는 초라할 뿐’이라고 읊조리는 라디오헤드의 ‘크립(Creep)’ 같은 어두운 곡 사이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린 특별해’란 가사가 나올 때 나도 모르게 피식 웃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리는 특별하다. 만성적인 자존감 결핍의 시대, 이 당연한 얘기가 우리는 고프다.
노진호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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