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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시론] 새 고입 정책으로 ‘강남 8학군’ 부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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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입 전형 동시에 실시해도

학벌주의 따른 서열화 불변

우수학생 단순 분산은 하책

미래형 교육과정 고민해야

중앙일보

정제영 이화여자대학교·교육학과 교수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고등학교 입학전형 시기 조정 방안으로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국제고와 일반고가 동시에 전형을 치르게 됐다. 이 방안의 정책 목표는 명확하다. 특수목적고교와 자사고 등의 성적 우수 학생 선점을 통한 독점 현상을 완화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이들 학교가 우수한 학생 독점이라는 기득권을 잃게 돼 스스로 일반고로 전환하는 선택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교육부의 정책 목표는 달성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 개혁 역시 ‘도대체 고입 제도는 왜 개선돼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문제 분석과 장기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고교 입학을 위해 왜 이토록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하는가. 이는 우리 사회가 지닌 뿌리 깊은 학벌주의에 기인한다. 고교 입학 경쟁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예선전이다. 대다수 부모는 대학 입시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고 좋은 고교에 자녀를 보내려 한다. 학부모의 이런 바람은 중학교·초등학교, 심지어 유치원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 학교에선 법으로 금지된 선행학습을 사교육 시장에서 치열하게 시킨다.

장기적으로 자사고와 외고가 사라진다 해도 고교 서열화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보는 학부모는 없다. 결국은 ‘서울 강남 8학군’이 또다시 등장할 것이라는 우려가 그래서 나온다. 단기적 정책효과가 아니라 궁극적 문제 해결이 되려면 학부모의 이런 근심까지 뿌리 뽑을 수 있어야 한다. 진정으로 미래 지향적 교육 방안을 내놓으려 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더 고민해야 한다.

중앙일보

시론 11/15


첫째, 고교 서열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고교 서열화의 시작점은 대학 입시에 유리한 학교를 찾는 학부모의 교육 수요와 직결된다. 명문대 입학자 수, 특정 학과 입학자 수로 고교 서열을 매기는 현실을 도외시하면 서열화의 고리를 풀기 어렵다. 일반고의 위기가 명문대 입학자 수의 감소로 규정되는 상황에서는 결국 이 문제가 제로섬(Zero Sum) 게임이 되고 우수 학생의 분배 문제로 종결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된다면 고교 입학전형 시기 조정 방안은 소위 우수 학생 나눠주기 정책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고교 교육 개혁의 본질은 모든 재학생이 본인 꿈에 따라 진로를 찾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교육 혁신이 되어야 한다.

둘째, ‘강남 8학군’처럼 학업 우수자가 소수의 학교로 또다시 집중될 경우 더욱 치열해질 입학 경쟁과 사교육 과열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자사고를 늘린 것도, 치열한 특수목적고 입학 경쟁을 완화해 과도한 사교육을 진정시키려는 정책 의도였다. 학부모에게 좀 더 다양한 고교 선택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고입 경쟁을 완화하려 했다. 이제 새로운 정책으로 자사고와 외고 선호가 줄어든다면 풍선효과처럼 소수의 과학고·영재고나 전국 단위 자사고의 입학 경쟁이 다시금 치열해질 것이 자명하다. 공급을 제한하면 가격이 상승한다는 것은 미시경제학의 기본 원리다. 전기 선발로 남아 있는 영재고·과학고의 고부담 입학전형 방식 개선도 함께 검토돼야 한다. 특정 지역의 일반고 선호가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바로 ‘강남 8학군의 부활’로 제기된다. 본인의 역량과 노력이 아니라 부모 경제력에 의해 고교가 배정되는 과거의 폐단이 되살아나게 된다.

셋째, 전체 고교의 입학전형에 대한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제도적으로 고교 입학 시기가 전기와 후기로 구분돼 있지만, 후기에서도 먼저 전형을 하는 학교가 있다. 바로 전국 단위로 선발하는 자사고와 일반고가 이에 해당하는데 소위 전기와 후기 사이의 ‘중기’ 고교라 할 수 있다. 전국 단위의 자사고는 정책적 설계에 따라 법인의 재정 부담하에 전국 단위로 학생을 선발한다. 하지만 교육부가 제시한바 ‘2009년 이전에 자율학교로 지정된 일반고’ 53개교는 별다른 부담 없이 전국 단위로 학생을 선발하는 특권을 누린다. 전기에 포함돼 입학전형에 대해 무제한의 자율권을 누리는 대안형 특성화고도 있다. 자사고와 외고만이 아니라 전체 고교 입학전형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변혁에 직면했다. 교육계도 이에 걸맞은 변신을 꾀해야 한다. 자사고와 외고 같은 해묵은 정책 논란에 발목 잡혀 있을 겨를이 없다. 고교 교육에 대해선 학교별 특성화를 넘어서는 학교 만들기가 진작부터 강조됐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을 활용한 교육도 시급하다. 교육부는 장기적인 미래 교육 로드맵과 모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그 길로 매진해야 한다.

정제영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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