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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남 문화부 차장 |
듣다보니 좀 의구심이 든다. 정치적 견해나 경제 전반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두고는 각자 입장이 다를 법한데 자기 분야에 대한 지원에는 하나같이 긍정적이다. 개인적으로 문화예술 지원에 반대하진 않지만 정부 주도의 지원이 늘 선(善)은 아니다. 특히 창작에 대한 지원은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지난 정부에서 문화예술인 지원배제명단, 이른바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진 게 가까운 예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지난주 국회에선 문화기본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성별, 인종, 세대, 지역,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신체적 조건 등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을 받지 않아야 될 항목에 ‘정치적 견해’를 새로 추가한 것이 핵심이다. 주목할 것은 그 대상이 문화예술인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란 점이다.
문화기본법은 2013년 말 처음 제정될 때부터 모든 국민이 문화권, 즉 차별받지 않고 자유롭게 문화를 창조·향유하고 문화활동에 참여할 권리를 지녔다는 점을 본격적으로 명시했다. 이 법에는 지금 봐도 여러모로 새로운 시각이 담겼다. ‘문화’의 폭넓은 정의도 그렇다. 예컨대 기존의 문화예술진흥법이 문학·미술·음악·무용·연극·영화 등 분야를 나열해 ‘문화예술’을 규정한 반면 문화기본법은 문화예술, 생활양식, 공동체적 삶의 방식, 가치체계, 전통 및 신념 등을 고루 ‘문화’로 아우른다.
이 법을 제정한 이유에선 문화정책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방향도 엿보인다. 기존의 관련 법률이 “주로 문화예술 창작자나 사업에 대한 지원과 청소년 교육 및 관련 산업 진흥에 치우쳐” 있어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문화적 권리에 대해서는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는 대목이다. 비록 그 이후 드러난 건 문화권 향상 대신 국정 농단이나 블랙리스트 같은 사건이지만 그렇다고 문화기본법의 취지까지 평가절하할 건 아니다.
새 정부가 적폐청산을 넘어 새로운 문화정책을 내놓을 때도 이는 유효한 방향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문화예술 관련 단체장의 물갈이는 물론 분야마다 각종 지원제도의 확대와 중단이 다양하게 벌어졌다. 달리 말하면 온갖 제도의 운영 경험이 상당히 축적된 셈이다. 그러니 문화산업 각 분야에 선심 쓰듯 나눠주는 게 능사가 아니란 것도 잘 알리라고 기대한다.
이후남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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