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준·이병기·이병호 사법처리
비리 척결 타당하지만 경중 따져야
권력 부침 따른 정치적 수난 없어야
국정원 특활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나 사건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로 사용 내역을 제출하지 않고 집행하는 예산이다. 연간 5000억원 가까운 큰돈이다.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던 안봉근· 이재만 전 청와대 비서관을 통해 청와대에 들어간 40여억원은 여론조사 비용 등에 쓰였다고 한다. 일부는 안·이 전 비서관이 사적으로 유용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장들은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알고 청와대 측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고, 관행으로만 여겼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 세금인 국정원 예산이 권력자의 비자금이나 쌈짓돈으로 전용된 점은 어떤 명분으로든 합리화할 수 없는 불법이다. ‘관행’이라는 주장도 변명에 불과하다. 특활비의 쓰임새가 잘못됐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이러한 특활비 비리에 대해 발본색원하려면 검찰 수사는 당위성을 갖는다. 하지만 사안의 경중에 따라 잘잘못을 따져 처벌의 수위를 세심하게 조절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검찰 안팎에선 “정보수장들은 청와대 지시로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모두 엄벌하려는 건 무리”라는 지적이 있다. “상관의 명백히 위법한 명령인 때에는 복종할 의무가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들이대며 왜 지키지 않았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공무원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고, 상관의 지시나 요구의 위법성 여부를 일일이 가려가며 업무를 수행하기는 쉽지 않은 게 엄연한 현실이다. 범죄에 가담한 적극성과 자발성 등의 정도(程度)을 참작하는 게 법치의 정신에 부합한다.
전직 국정원장들의 수난과 몰락을 지켜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권력과 정권의 부침에 따라 권력자에 의해 기용돼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관행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싸잡아 법적 책임을 묻는 건 법적 편의주의에 불과하다. ‘현대판 사화(士禍)’의 피바람이 불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정치적 반대파의 공격에 의해 화를 당하던 조선시대 선비들의 어두운 역사에 빗댄 것이다. 정권이 바뀐 뒤 국가정보기관의 수장이 처벌받거나 수사 대상에 오르는 일이 반복될까 걱정된다. 고위 공직은 기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말이 시중에 나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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