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 자율규제 무용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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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지난달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어린아이들이 확률형 게임을 통해 도박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여명숙 게임물관리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확률형 아이템’을 두고 “예고된 ‘바다이야기’”라고 말했다. 원하는 아이템이 나올 때까지 계속 돈을 투입하는 뽑기 구조인 ‘확률형 아이템’의 도박성과 중독성이 짙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를 제어할 장치는 ‘업계 자율규제’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이템 확률을 공개하고, 이를 실행하지 않는 게임의 명단을 공개하는 정도여서 실효성이 없다. 정부는 새로운 규제에 대해 “과도하다면 규제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에 머물러 있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가 제대로 논의되지 않으면서 ‘게임판 농단 세력’이 있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해 가장 큰 문제는 너무 많은 돈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용자들은 원하는 아이템을 얻기 위해 돈을 얼마나 써야 할지 가늠할 수 없다. 주기적으로 돈을 쓰게 만드는 것도 문제다. 시즌이 새로 시작되거나 새 확장팩이 나올 때마다 비싼 돈을 들여 얻은 기존 아이템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새 아이템을 사야 한다. 좋은 아이템이 나올 때까지 수백만~수천만원을 써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지속적이고 주기적으로 돈을 써야 하는 구조가 되면서 ‘도박 논란’이 불거져 나왔다.
그러나 이를 제어할 장치들은 사실상 없다. 게임업계는 올해 7월부터 확률형 아이템의 명칭·등급·제공 수·제공 기간·구성 비율 등을 제공하도록 하는 자율규제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자율규제인 만큼 강제성이 없고 위반했을 경우의 벌칙도 ‘게임명 공개’ 등에 불과하다. 강제성도 없고,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없다. 미준수 업체 리스트는 아직까지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다.
자율규제에 대한 이용자들의 불신이 깊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게임업계는 “개선할 방침”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게임산업협회 관계자는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한 민원이 계속 있어 어느 정도 불만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며 “개선 방안을 계속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자율규제로는 문제들을 개선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이원욱 의원실의 정기조 비서관은 “확률형 아이템은 소비하는 순간 캐릭터의 능력이 확 달라지는 차별적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확률이 낮다고 할 사람이 안 하지는 않는다”며 “확률 공개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확률형 아이템에 결제한도를 부여해야 한다는 지적이 강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PC게임의 경우 결제한도가 청소년 7만원, 성인 50만원으로 정해져 있다. 결제한도가 없는 모바일 게임 역시 이 정도 수준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게임업계의 반발은 완강하다. 게임업계는 결제한도 규제로 해외 게임과의 역차별이 발생해 국내 게임산업이 침체를 맞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정부에 PC 온라인 게임의 결제한도를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규제 논의가 국회에서도 맴돌고 있다는 점이다. 이 의원은 지난해 획득 확률이 10% 이하인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는 게임을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으로 분류하고 확률형 아이템으로 얻은 게임 아이템을 거래 업체를 통해 재판매하거나 재매입하는 걸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국회 소관위(교문위) 심사에 올라간 후 논의에 진척이 없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확률형 아이템 규제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를 묻자 여명숙 위원장은 “확률형 아이템 규제 논의를 할 때마다 공회전이 된다”며 “게임판의 농단이 심각하다”고 했다. 규제를 막으려는 세력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정부 역시 아직까지는 규제보다는 게임 진흥에 방점을 두고 있다. 논란이 거세지자 정부는 지난 8월부터 ‘민관합동 게임제도개선협의체’를 꾸리고 게임산업 전반의 규제와 관련한 산업계·학계의 의견을 듣고 있지만 구체적인 대안이 나올 가능성은 없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결제한도를 늘리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소비자보호 방안을 함께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협의체 참여자들의 중론”이라며 “다만 일부에서 지적하는 모바일 게임의 결제한도 도입은 검토한 바 없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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