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민주화의 든든한 뒷배로 자리매김했던 헌재가 기능부전 상태에 빠졌다. 9인 합의제 기관인데 퇴임한 재판관 3인의 후임선출이 지체되고 있어서다. 법률의 위헌결정, 탄핵결정, 공권력에 의한 기본권 침해를 확인하는 헌법소원 인용결정 등 헌재의 핵심적 결정은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6인 재판부에서 1명이라도 이탈하게 되면 종국심리에 참여한 절대다수 의견에도 불구하고 헌법수호를 위한 결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궐석된 재판관 3인 전원의 의견이 모두 위헌상태를 옹호하는 의견으로 간주되어 버리는 꼴이다. 이처럼 사실상 헌법재판의 정지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입헌주의 헌정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새 위원장을 맞은 인권위는 출범 후 22년간 확고히 정립되어 왔던 소위원회의 만장일치 처리관행을 폐기하였다. 인권침해 진정에 대한 절차적 보장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킨 것이다. 또한 방송행정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합의제 특별행정기관으로 설치된 방통위는 5인의 위원을 채우지 못한 2인체제가 오래되었는데 위원장마저 탄핵소추되어 기능정지상태다.
법원마저 정치적 사건들이 넘쳐나면서 사법과 정치가 교차하는 담벼락 위로 법관들을 내몰고 있다. 11월에 이재명 제1 야당대표에 대한 허위사실공표사건과 위증교사사건에 대한 1심 선고가 예고되어 있다. 이 사건들의 형식은 형사사건이지만 실질은 정치사건이다. 정치재판을 형사사건으로 배당받은 법관들은 형사사법의 정의를 세워야 할 사법적 책무와 검찰권의 남용을 통제하고 정치의 사법화를 절제시켜야 할 헌법적 책무 사이의 딜레마로 내몰리고 있다. 형사적 관점에서 보면 유무죄의 사실판단과 양형판단만 해야 하지만 권력통제의 관점에서 보면 형평성을 잃은 검찰권 남용에 편승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국회의 절대다수인 야당의 대표라는 헌정에서의 위상은 대통령과 함께 국정의 협치를 이끌어가야 하는 막중한 지위일 뿐만 아니라 차기 대선의 유력주자라는 점에서도 헌정적 의미가 크다. 벌금 100만원 이상과 같은, 책임효과가 결코 높다고 볼 수 없는 죄책만으로도 장기간 피선거권이 정지된다.
여당은 대통령의 불소추특권 조항까지 들먹이며 야당대표의 사법리스크를 조장하고 있다. 대통령의 형사상 특권은 헌재가 확인한 바 있듯이 개인의 특권이 아니라 공직 자체에 결부되어 국민대표라는 공직의 안정성과 독립성을 보장하여 궁극적으로 국민주권을 보장하는 제도다. 특히 1인 국민대표기관인 대통령의 경우 주권자의 신임이 탄핵의 핵심기준인데 취임 전 재판을 이유로 선거를 통해 표출된 국민의 직접적인 신임 자체를 부정하는 해석론을 따르기가 쉽지 않다.
애당초 이들 사건이 소추된 발단이 선거라는 정치적 계기 때문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선거의 본질은 말로 오가는 정치공방을 통해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 것이다. 거짓말로 혹세무민하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지만 그렇다고 윤리적·정치적 책임을 넘어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모자라 선거결과를 번복하거나 피선거권을 정지시켜 국민대표 선출이라는 민주공화국의 핵심절차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과도한 것이다. 특히 허위 여부가 불분명한 말 한마디로 후보자의 자격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할 만한 사유가 되지 못하는 경우에도 선거 자체의 효력을 다투는 선거쟁송절차가 아닌 단순 형사사건으로 다루는 것 자체가 민주공화제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유권자들의 민주적 결정을 검사나 법관의 형사적 판단으로 대체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을 바보취급하면서 법조엘리트들의 자의적 판단으로 후보자의 참정권을 박탈하고 나아가 유권자의 공직선임권을 박탈하는 것이 민주공화국일 수 있는가. 더구나 현직 대통령은 비슷한 정황에도 기소되지 않았다는 형평성 문제에 더하여 검찰권 자체가 ‘정적탄압’ 혹은 ‘부인방탄’의 도구로 사유화되었다는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고서 어찌 단순 형사사건의 정의를 내세워 떳떳이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임을 자부할 수 있을 것인가.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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