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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격세지감 민주당…2년 전 '봉숭아학당', 이제는 '나홀로 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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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당직자 "당이 조용해도 너무 조용"

난닝구 대 빽바지 노선 투쟁 안 보여

야권 정계개편 혼돈속 민주당만 집토끼 지켜

"지방선거 결과 나쁘면 내전 재연할 수도"

“(당이)조용해도 (내홍 없이) 너무 조용하다. 지금 추미애 대표는 민주당 역대 최고의 권력을 누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지난 9일 “툭하면 싸움이 벌어졌던 예전의 당 분위기와 지금은 사뭇 다르다”며 이같이 전했다. 민주당의 DNA는 '노선 투쟁'이었다. 그런데 9년 만에 집권 여당이 된 민주당에서 고질병이었던 노선 싸움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있는 현 상황을 빗대 말한 것이다.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모두 당내가 시끄러운데 여당만 나홀로 조용하다.

중앙일보

2003년 당시 유시민 새천년민주당 의원이 캐주얼 차림으로 국회 본회의에 등원해 선서를 하려 하자 일부 의원이 복장을 문제삼아 선서가 불발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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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노선 싸움은 노무현 정부 출범 초인 2003년이 대표적이다. 15년전 당시 새천년민주당 내부는 ‘빽바지 대 난닝구’로 불린 친노(친노무현)와 호남의 전쟁터였다. ‘빽바지’는 친노 진영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같은 해 4월 재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한 뒤 본회의장에 옅은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고 오며 붙여졌다. ‘난닝구’는 그해 9월 당무회의장에서 러닝셔츠 차림의 50대 남자가 “당 사수”를 외친 사건으로 인해 호남과 구 민주계를 가리키는 용어가 됐다.

17대 국회 때인 열린우리당 시절엔 ‘108 번뇌’가 등장했다. 탄핵 역풍으로 국회에 입성한 여당의 초선의원 108명이 각자 자기 목소리를 내며 혼란이 극심했던 당내 상황을 꼬집은 말이다. 당시를 기억하는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이때와는 달리 요즘은 당내 초선 의원들이 점잖고 조용하다"며 "초선들이 들이받는 걸 피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추미애 대표 역시 8년 전 곤욕을 치렀다. 2009년 12월 당시 추미애 환경노동위원장이 당론과 다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상임위에서 표결해 통과시키자 당 지도부가 추 위원장을 윤리위에 제소하는 희한한 상황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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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 주승용 최고위원(왼쪽 둘째)이 정청래 최고위원(오른쪽)의 &#39; 사퇴 공갈&#39; 비난 발언에 화를 내며 언쟁을 벌이다 문재인 대표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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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내홍의 최정점은 2년 전의 '봉숭아 학당'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시절인 2015년 4ㆍ29 보궐선거에 패한 뒤 주승용 당시 최고위원이 당 지도부 책임론을 들고 나오자 정청래 최고위원은 다음 달 최고위원회의에서 “(주 최고위원 본인은 사퇴한다고 해 놓고) 사퇴하지도 않으면서 공갈을 치는 게 더 문제”라고 공개 비난했다. 분노한 주 최고위원이 사퇴를 선언하고 회의장을 나갔는데 유승희 최고위원이 “어버이날이라 어제 경로당에서 노래 한 소절 불러드리고 왔다”며 ‘봄날은 간다’를 불러 최대 화젯거리가 됐다.

민주당이 지금 평화 시대로 비치는 이유는 당장은 내전을 치를 요인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7%로 다른 정당들을 압도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고공행진(74%)에 힘입어 집권 여당인 민주당도 전례 없는 지지율을 즐기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여파는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보수 야당들은 야권 재편을 놓고 혼란스런 내전을 계속 벌이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혼자서 집토끼 결집 효과를 만끽하고 있다. 당내에서 내년 지방선거를 놓고도 긍정적 전망이 계속되는 이유다. 분위기가 좋으니 싸울 이유가 줄었다.

다른 얘기도 있다. 국민의당이 창당하면서 당내 반문(反文) 진영이 대거 국민의당으로 이동해 자연스레 갈등 요인이 줄었다는 주장이다. 그간 민주당 내전의 한 축이던 호남 의원들은 지금 국민의당에 있다. 민주당의 전통적 텃밭은 호남인데 민주당 소속의 광주·전남 국회의원은 이개호 의원이 유일하다.

민주당이 앞으로도 내전 없는 시대를 계속 이어갈지는 내년 6월 지방선거에 달려 있다는 게 대체적인 기류다. 지방선거 결과가 당내 기대와는 달리 실망스럽게 나올 경우 당내 일부가 '노선 전면전'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당직자는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하거나 지방선거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불만을 감춰뒀던 의원들이 전면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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