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낮추며 ‘기업형 덤핑’
새 아파트 수천세대 등기 쓸어가
법무사 영역에 변호사 뛰어들고
공인중개사 가세… 2조 시장 혼탁
“제출사무원증 개선 시급” 지적에
대법 “전자 출입증 내년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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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게티이미지뱅크
법무사가 전통적으로 대행해오던 등기신청 업무에 변호사들까지 뛰어들면서 등기시장이 포화상태가 된 가운데 무자격 브로커까지 활개를 치고 있다. 수수료를 낮춰 사건을 싹쓸이하는 ‘기업형 덤핑’은 물론 변호사나 법무사 명의를 빌리는 불법이 성행하는 등 시장이 혼탁해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부동산 등기는 토지나 건물에 대한 소유나 매매 등에 따른 권리 변동을 공시하는 제도다. 집을 사고 팔 때는 본인이 직접 등기소에 신청하거나 변호사나 법무사를 대리인으로 해서 등기소에 권리변동을 신청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
등기 시장은 연간 조 단위를 넘는 규모다. 대법원이 발간한 2016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처리된 부동산 등기사건은 1,095만 6,306건에 달한다. 최소 수수료만 1조원을 훌쩍 넘는다. 김태영 대한법무사협회 공보전문위원은 “건당 수수료가 최소 20만원인 소유권이전등기가 500만건이 넘고, 최소 5만원인 등기 변경이나 말소 사건이 500만건이 넘는다”며 “최소 수수료로 계산하면 1조5,000억원에 달하며 최대 2조원대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무사가 주도하던 등기 시장에 변호사들은 물론 공인중개사와 브로커들까지 뛰어들면서 시장은 혼탁해지고 있다. 실제로 법무사들은 “먹고 살기 힘들어진 변호사들이 이제는 등기사건까지 영역을 넓혀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고 푸념한다. 변호사는 등기서류를 대리하는 ‘제출사무원’ 1명뿐 아니라 등기신청 업무를 돕는 '사무원'을 제한 없이 고용할 수 있어, 제출사무원과 사무원을 각 1명만 고용할 수 있는 법무사가 경쟁에서 밀린다는 설명이다.
최근에는 이런 점을 악용해 빌린 변호사 명의로 사무소 5곳을 차리고 ‘기업형 등기덤핑’을 한 브로커가 붙잡혔다. 2013년부터 경기 일산과 서울 공덕동 일대 법무사들 사이에서는 “갑자기 등기신청 사건이 확 줄었다”는 하소연이 나왔는데 브로커가 쓸어간 것이다.
임모(41)씨는 2013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법무사와 변호사 각 1명씩의 명의를 빌려 경기 고양과 파주, 인천 일대와 서울 남부 및 서부 지역에 자신의 이름을 딴 사무실을 차리고 직원들을 고용해 등기신청 사건 3만여건을 처리했다. 챙긴 수수료만 114억여원에 달했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지난 2일 임씨 등 주범 3명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명의를 빌려준 오모(61) 변호사와 고모(58) 법무사에게는 각각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신규 아파트가 들어서면 수천 세대 등기업무를 한 번에 맡을 수 있는 점을 악용, 공인중개사 등과 결탁해 싹쓸이를 한 것이다.
최근에는 온라인 경매를 유도해 정해진 수수료보다 낮게 가격을 후려치는 ‘불법 등기 경매 사이트’까지 등장했고, 지난 7월에는 가짜 자격증을 도용해 등기 수수료를 벌어들인 사기 사건도 발생했다. 전직 사무장인 공모씨는 길에서 주운 제출사무원증으로 이 사이트에서 등기신청사건을 의뢰 받아 돈을 받고 등기신청을 해오다가 꼬리를 잡혔다. 공씨는 주운 제출사무원증에 자신의 사진을 붙여 위조한 뒤 등기소에서 10여건을 처리했다. 짧은 기간 여러 건을 처리한 점을 이상하게 여긴 등기소 직원의 신고로 공씨는 검찰 수사를 받았고 결국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전문가들은 불법 브로커가 성행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김혜주 서울남부법무사회장은 “법무사는 정해진 수수료만 받는데, 브로커들은 은행에 납부하는 공과금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의뢰인의 부담을 높이고 사고 위험도 크다”며 “등기를 자주 하지 않는 국민들은 본래 내야 하는 금액보다 높은 비용을 내서 손해를 입게 된다”고 말했다. 일부 다주택 보유자를 제외하면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사람들이 등기를 하게 되는 일은 평생 한두 번에 불과하기 때문에 브로커를 통하면 어떤 위험이 있는지를 알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법무사 보수는 부동산등기나 공탁신청 금액에 따라 법무사가 받는 최고금액이 정해져 있다. 5,000만원 이하 부동산 소유권 이전 등기 기본 보수는 7만원, 거래금액이 3억~5억원이면 최대 24만5,000원, 5억~10억원이면 최대 38만5,000원을 받는 식이다.
법무사 감독기관인 각급 법원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변호사ㆍ법무사 명의를 빌린 이른바 ‘보따리 사무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편법으로 사건을 유치하거나 법무사등록증을 대여한 사건을 엄격하게 대처하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1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모두 65명이 불법ㆍ편법 등기신청 업무로 업무정지나 제명, 과태료, 서면경고 등의 조치를 받았다.
그러나 서울에서 활동하는 한 법무사는 “등기신청 서류에 1만원을 끼워서 서류를 제출하면 제출사무원증이 없어도 받아준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며 “브로커들이 한꺼번에 수천 건을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은 사무원증이 없는데도 마구잡이로 서류를 접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전자적으로 제출사무원 확인이 가능한 ‘전자출입증’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며 “이르면 내년부터 명확한 제출사무 관행을 정착시키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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