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끼 3500원 쌀국수 먹으면서도 韓 아이돌 앨범 구매엔 지갑 열어
한국어, 곧 베트남 제1외국어로
지난 8일 오후 호찌민 란안스타디움. 한국·베트남 수교 25주년을 기념해 열린 'K팝 우정콘서트' 현장 여기저기서 한국어가 들렸다. 미키마우스 모양 머리띠에 틴탑 멤버 '리키'의 이름을 한글로 새긴 탄 타오(Thanh Thao·18)양은 한류 스타에 반해 한국어를 독학했다. "5년 정도 공부해서 지금은 노랫말을 줄줄 읽을 수 있을 정도예요. 오늘 공연장 함께 찾은 친구들에게 '한글 머리띠'도 손수 만들어 선물했어요."
'쌀국수의 나라'에서 한류(韓流)는 여전히 강력했다. 달라진 건 오히려 베트남 시장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태도. 중국발 한한령(限韓令) 이후 베트남은 '기회의 땅'으로 부상했다. 국내 콘텐츠 기업 35곳이 이번 콘서트와 박람회 행사에 참가한 것. 대졸자 초임 월급 1000만동(약 50만원)의 '구매력 낮은 나라'로 보던 이전과는 천양지차다. 각각 뭐가 달라졌을까.
◇여기저기 들려오는 '한국어'
베트남 호찌민 젬 센터에서 지난 8일(현지 시각)부터 3일간 한국콘텐츠진흥원·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공동 주관하는 '2017 코리아 브랜드 & 한류상품 박람회'가 열렸다. 7만동(약 3500원)짜리 쌀국수로 한 끼 때우면서도 아이돌 가수 CD 사는 덴 척척 지갑 여는 한류팬 1만명이 국내 방송·게임·웹툰·애니메이션 콘텐츠를 맛보고 즐겼다. 티아라·틴탑·아이콘 등 아이돌 그룹의 등신대 포토존이 설치된 3층 전시관에선 사진 찍기를 대기하던 베트남 소녀팬들이 이어폰을 꽂은 채 한국어 노랫말을 흥얼거렸다.
‘한국―베트남 K팝 우정 콘서트’가 열린 베트남 호찌민 란안스타디움에선 공연 2시간 내내 ‘한국어’가 들렸다. 현지 팬들이 노래가 나올 때마다 한국어 가사를 합창했기 때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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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가 베트남에 본격적으로 몰아닥친 10년 사이 생긴 가장 큰 변화는 '한국어'다. 한류 열풍 여파로 한국어 수요가 점점 높아지면서 베트남 교육부는 최근 영어·프랑스어·러시아어·중국어·일본어에 이어 한국어를 '제1외국어'로 전환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우정콘서트 무대에 오른 티아라가 '내이름은' '롤리폴리' '넘버나인' '러비더비' 등 4곡을 열창하는 동안, 현지 팬클럽 1000여명이 한국어 가사로 '떼창'하는 장관이 연출됐다. 틴탑·헤일로·스누퍼처럼 최정상급 한류 스타가 아닌 아이돌 그룹의 노래도 마찬가지였다.
◇신격화된 한류 스타
베트남은 동남아시아권에서도 한류 호감도가 가장 높은 국가다. 현지에선 한류 스타를 두고 "솨이 카(Soai Ca)" "옥느(Ngoc Nu)"라고 부른다. 번역하면 '신(神)' '여신' 정도의 의미. 한국 젊은 세대가 자신이 선망하는 연예인의 이름 앞에 '갓(god)'을 붙여 신격화하는 현상과 흡사하다.
현지 10대 팬들은 "한국 아이돌은 노래·춤·외모 모두 완벽하다"고 평했다. 호 티 홍 늉(Ho Thi Hong Nhung·18)양은 "실력도 뛰어난 데다 친근하기도 하다"면서 "신비주의 고수하는 베트남 연예인과 달리, '런닝맨' 같은 예능에 출연해 친근한 이미지를 준다"고 했다. 현지 연예기획사인 스타파크의 빅 응이(Bich Nghi) 매니저는 "베트남 젊은 층은 한류 스타의 다재다능함에 매력을 느낀다. 아이돌이라도 '싱어송라이터'가 많다"고 말했다.
◇젊은 베트남
글로벌 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베트남인의 평균 연령은 30.4세였다. 베트남이 '젊은 국가'라는 점도 모바일 콘텐츠에 강점을 가진 국내 기업들에 호재라는 평가다. 베트남 최초의 한국 웹툰 전문 플랫폼 '비나툰'을 론칭 예정인 모비코 이진우 대표는 "콘텐츠 분야에서 베트남은 아직 '절대 강자'가 없기 때문에 '선점'이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이번 박람회에는 국내 콘텐츠 기업 35개사와 베트남 및 아세안 기업 53개사가 참가해 410건의 비즈매칭이 이뤄졌다. 강만석 콘진원 원장직무대행은 "한류의 불씨가 베트남에서 더 뜨겁게 타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호찌민=박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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