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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초반의 경쾌함 어디로… 빛바랜 '황금 캐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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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꾼

"의심은 해소시켜주면 확신이 되거든."

2008년 4조원대의 금융 피라미드 사기 사건이 일어나 희생자가 속출한다. 하지만 주범인 '장두칠'(허성태)은 중국으로 종적을 감춘 뒤 돌연 사망했다는 소식만 나온다. 사기 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은 '지성'(현빈)은 장두칠이 아직 살아 있다고 굳게 믿고, 담당 검사였던 '박희수'(유지태)에게 "그를 잡아오자"고 뱃심 좋게 제안한다. 박 검사를 은밀하게 도와주던 사기꾼 3인방 '고석동'(배성우), '춘자'(나나), '김 과장'(안세하)까지 합류하면서 장두칠을 한국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본격적인 계획에 착수한다.

22일 개봉하는 '꾼'(감독 장창원)은 주·조연급 배우를 여러 명 등장시킨 사기극 영화다. '멀티 캐스팅'이나 '떼주연'으로도 불리는 배우 기용 방식은 다양한 인물 군상이 부딪치면서 의혹과 갈등을 눈덩이처럼 키우는 사기극과 잘 어울리는 속성이 있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타짜'와 '도둑들', 조의석 감독의 '마스터'에서 주연 배우가 여러 명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조선일보

영화 ‘꾼’에서 ‘지성’(현빈·왼쪽)과 ‘박희수 검사’(유지태)는 사기 사건 해결을 위해 의기투합한다.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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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끼는 빨리 물수록 호구" "짬밥보다는 콩밥"처럼 감칠맛 있게 착착 감기는 감각적 대사들 덕분에 영화 초반은 무척 경쾌하고 속도감 있다. 유치장에서 무릎 꿇은 채 쉴 새 없이 내뱉는 배성우의 능청스러운 독백이나 '남한산성'의 용골대와 '범죄도시'의 독사 역을 맡았던 허성태의 간담 서늘한 눈빛 연기도 빛난다.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황금 캐스팅에 성공하고서도 복잡하게 얽힌 음모가 드러나는 후반까지 이야기를 끌고 가는 뚝심이 부족하다는 점이 줄곧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기극이라는 면에서는 '타짜'와 '도둑들' '마스터' 같은 전작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소매치기와 사기꾼 같은 변두리 인생들이 정치인과 검찰 같은 엘리트를 심판한다는 구조는 '내부자들'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가벼운 사기극에서 무거운 고발극으로 넘어가는 후반부에서, 경쾌함은 증발하고 그 자리에 진부함이 남는다.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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