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은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청탁을 받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불공정한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통해 국민연금공단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들을 직권남용과 뇌물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부당성은 특검 측 기소 논리의 전제를 이루고 있는데 그 전제가 부인된 것이다.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에게 “합병 찬성 유도로 공단 보유주식 가치에 손해를 입혔다”며 유죄를 선고한 1심 형사재판부의 판결과도 상치된다. 재판부는 국민연금공단의 합병 찬성 의결 자체에 투자 손실 초래 등의 배임적 요소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 1심 형사재판부 판결처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으로 이 부회장이 추가 현금 출연 없이도 사실상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 강화 효과가 발생한다”고 인정하면서도 합병으로 얻는 ‘경영상의 이점’도 중요한 합병 이유로 받아들였다. 이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가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 아니었다는 뜻으로,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합병을 추진했다는 특검의 판단과는 다르다. 합병은 특검이 주장한 이 부회장 승계 작업의 핵심이다. 이 부회장은 합병을 포함한 승계 작업 전반에 대해 박 전 대통령에게 포괄적 묵시적 청탁을 했다고 해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지배력 강화 시도가 법적으로 금지되지 않았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법원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포괄적 승계 작업의 일환이었다고 해도 특정인의 지배력 강화가 법적으로 금지된 게 아닌 이상, 지배력 강화 목적이 수반됐다고 해서 합병이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원고 측인 일성신약이 제시한 증거에 의해서만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민사소송의 판결이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 국정 농단 관련 사건을 다루는 형사재판과는 판단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관련 재판이 진행될수록, 또 상급심으로 갈수록 판결끼리 상충하지 않고 사실과 상식에 부합하는 판결이 내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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