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치램프 쓰다 돌풍에 불길 번져… 농장주 거액 요구에 사재 털어
동료들 “누구나 당할수있어” 모금도
매뉴얼 안지켰다고 경고까지 받아
벌집이 발견된 곳은 A 씨의 옛 염소농장이었다. 수년 전까지 염소를 키웠지만 당시에는 운영하지 않던 곳이다. 벌집은 A 씨 농장 주택에서 약 200m 떨어진 소나무 아래에 있었다. 현장에는 커다란 장수말벌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보통 벌집이 발견되면 그물망으로 싸거나 흙으로 덮는다. 하지만 독성이 센 장수말벌인 데다 벌집이 땅속에 있어 시도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불을 이용해 벌집을 제거하기로 하고 휴대용 부탄가스통에 토치램프를 부착한 뒤 불을 붙였다. 잠시 후 갑자기 돌풍이 불면서 삽시간에 근처 소나무와 풀에 불이 옮겨붙었다. 당시 두 사람은 안전장구를 착용해 시야가 흐렸고 200m 높이의 야산 중턱에 오르느라 미처 소방용수도 준비 못했다. 결국 불은 소나무 40그루와 풀밭 1000m²를 태운 뒤 1시간 뒤 꺼졌다. 소방서 추산 피해액은 65만8000원.
다음 날 A 씨는 화순군에 민원을 제기했다. 그리고 자신을 찾은 두 소방관에게 “나무가 타고 철조망이 부식되는 등 1000만 원 정도 피해를 입었다”며 보상을 요구했다. 두 소방관이 다시 찾아가 합의금을 깎아 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했다. 어쩔 수 없이 두 소방관은 500만 원씩을 마련해 합의했다. 윤 소방위는 돈이 부족해 대출까지 받았다. 소식을 들은 화순소방서 직원들은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다”라며 성금 500만 원을 모아 두 소방관에게 건넸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두 소방관은 벌집 제거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방서 징계위원회에 회부됐고 징계에 준하는 불문경고 처분을 받았다. 두 소방관은 벌집 화재 후 ‘조직에 누를 끼치고 동료들 보기 부끄럽다’는 부담에 힘겨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모두 근무지를 옮긴 상태다.
18일 소방청에 따르면 전국 19개 소방본부 가운데 6곳은 행정종합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소방청 관계자는 “전남 등 4곳은 내년 보험에 가입할 예정이라 소방관이 합의금을 물어내는 일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화순=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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