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아 ‘꽉 펑 헥’전
고리원전·국정농단 등 이슈 포착
이질적 색조의 대작 ‘군중헤엄’ 눈길
백현진 신작전
산책하며 찍은 땅바닥 사진 짜깁기
콜라주 작업으로 특유의 해석 담아
자하미술관에 내걸린 방정아 작가의 대작 <군중헤엄>(부분). 해수욕장에서 헤엄치는 군중의 모습을 낯설고 기묘한 색조에 휩싸인 화면으로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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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네슘 결핍’.
그림 제목이 의아스럽다. 소재는 젊은 여자의 불안한 얼굴. 반 고흐의 그림처럼 노란 바탕에 점선을 메워넣어 그렸다. 왼쪽 눈자위 아래로 처진 듯 떨리는 듯 푸른 주름선 한 줄이 겹쳐 보인다. 작가는 무슨 의도로 이런 얼굴을 그렸을까. 몸에 마그네슘이 부족하면 눈자위부터 떨리는 현상이 일어난다는데, 그런 증상의 단면을 여러 심리적 상념을 담아 함께 그린 것이라고 그는 털어놓는다.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미술관이라는 부암동 자하미술관 1, 2층에서 신작전 ‘꽉 펑 헥’(29일까지)을 열고 있는 ‘중견급’ 소장작가 방정아(49)씨의 그림들은 요즘 미술 애호가들의 화제가 되고 있다. 이미지나 이야기 여러 측면에서 재미있고, 나이답지 않게 변화된 회화적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이다. 부산에서 활동해온 그는 여성 작가로서 바라본 섬세하고 기이한 일상 모습을 특유의 표현주의적 그림, 불교의 관음상이나 클레이 모형, 플래시 애니메이션 등으로 지난 10여년간 변주해왔다. 최근에는 사회적 이슈가 된 부산 고리 원자력발전소의 풍경,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대한 단상 등 현실에 대한 좀더 강렬해진 인식이 그가 만난 여자와 식물들의 활력과 우울, 불안 등이 담긴 초상, 정물 등과 함께 뒤섞여 나타나고 있다. 기법적으로도 파스텔, 크레용을 유화와 섞어 민감하고 섬세한 여러 잔선들과 몽롱한 색조로 의식의 결들을 드러내는가 하면, 새카만 연탄가루와 수성 접착제, 물을 결합한 방정아표 안료로 골판지에 자신이 바라본 세상과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드로잉하듯 옮겨놓는 파격을 구사한다.
방정아 작 <마그네슘 결핍>의 일부분. |
특히 눈을 사로잡는 건 1층의 대작 <군중헤엄>이다. 여름철 해수욕장에서, 대형 욕탕에 있는 것처럼 회색빛 물살 위를 버둥거리는 피서객들의 벗은 몸뚱이를 이질적 색조로 풀어놓은 이 작품은 회화 보는 맛이 모처럼 얼근하게 배어 나오는 작품이다. 마치 국 위의 건더기처럼 누런 물살을 일으키며 누런 몸을 멀건 물 밖으로 내어놓은 군상들이 생경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까끌까끌한 파스텔 안료의 질감을 드러낸 채 단순한 지형선으로만 묘사된 고리 원전의 삭막한 풍경이나, 그 고리 원전을 배경으로 남자의 엉덩이를 꽉 잡으며 포옹하는 여자의 모습을 담은 작품 등에서 이 작가가 지닌 감각의 깊이와 자유로운 정신을 짐작하게 된다.
페리지갤러리에서 설치된 백현진 작가의 콜라주 전시 공간. 3년여간 서울 연남동 자신의 집을 산책하면서 바라보고 찍은 땅바닥 사진 70여점을 여러 색조로 인쇄한 종잇조각들을 붙여 벽면을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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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부밴드 출신의 음악가이기도 한 백현진 작가는 의도 없이 자유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특유의 응시를 작품에 담아 보여주고 있다. 서울 서초동 페리지갤러리의 신작전(11월11일까지)은 전시장 사면에 온통 땅바닥 사진들뿐이다. 그는 연남동 자기 집 거리를 2015년부터 산책하면서 찍은 땅바닥 사진들을 짜깁기해 1도 인쇄한 사진 조각들을 전시 공간에 촘촘히 붙여놓았다. 담배꽁초가 떨어지고 깨진 바닥을 적절하게 시멘트로 땜질한 서울 한 공간의 세상이 작가의 눈길과 태도에 의해 새로운 이미지로 실체를 드러낸다. “어떤 의도나 생각도 없이 그저 자신의 취향과 습관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작업이 됐다”고 작가는 말한다.
2년 전 서울 피케이엠갤러리 전시를 통해 매혹적인 선과 색조를 즉흥적으로 빚어내는 회화작가로 성가를 올린 그는 이 전시에 단 한 점의 즉흥작업 외에는 영상과 이런 사진 조각들만을 내놓았다. 단골술집에서 취해 졸다가 촛불에 머리를 태우는 장면이 담긴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과 하늘거리는 숲 풍경을 담은 영상이 이 땅바닥 콜라주와 함께 관객을 맞는다.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도 참여 중이다. 미술관 공간을 교회당 얼개처럼 만들고 ‘실직폐업이혼부채자살 휴게실’이란 이름으로 우울한 이 시대 청년들의 내면이 담긴 작가의 그림과 시를 전시하는 특설관을 꾸려놓았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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