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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사랑받는 고전 남긴 난 행운아…홍상수 감독과 작업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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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영화 반세기 대표하는 프랑스 배우 장 피에르 레오

매일경제

"언젠가 한국의 감독님과 영화를 찍고 싶습니다. 특히나 홍상수 감독님과요(웃음)."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처음 방문한 프랑스 배우 장 피에르 레오(73)는 "대만의 차이밍량, 일본의 스와 노부히로의 작품에는 출연했지만 한국 감독과의 인연은 아직"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14일 오후 부산영화제 현장에서 기자와 만난 이 프랑스 노배우는 "목이 타서 물 좀 마시고 싶다"며 벌컥벌컥 생수부터 들이켰다. 그러더니 뒤집은 두 손을 내뻗어서는 다시 한 번 "안녕하세요"라고 해달라며 부추기는 것이다. 숱한 그의 명작에서나 보던 예의 그 익살맞은 표정으로. 이에 또박또박 "안녕하세요"라고 하니, 그가 잔뜩 힘주어 인사한다. "봉주르! 봉주르!"

레오는 누벨바그의 걸작들에 출연해왔던 영화사의 신화적 인물이다. 필모그래피 자체가 영화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0년대 후반 시작돼 1962년 절정에 이른 프랑스 영화 운동인 누벨바그는 당시 영화계에 주제와 기술상의 혁신을 일으킨 새로운 물결(New Wave)이었다. 레오는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루이14세의 죽음'을 선보인 나에게 명예 황금종려상을 준 건 그간의 공로를 인정한다는 뜻인 것 같다"고 했다.

매일경제

젊은 시절 레오(오른쪽)와 故 트뤼포 감독. 트뤼포 감독은 레오의 아버지이자 맏형 같은 존재로, 데뷔작 `400번의 구타`(1959)부터 `앙트완 드와넬` 연작 등을 통해 오랜기간 레오와 호흡을 맞췄다.


"영화 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젊은 비평가들이었던 이들이 새로운 영화를 만들겠다며 감독이 됐어요. 프랑수아 트뤼포, 장뤼크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에릭 로메르, 자크 리베트 등이 그 주역들이죠. 제 데뷔작인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1959)부터 고다르 감독의 '남성, 여성'(1966) 등을 통해 저는 자연스레 누벨바그의 메인 배우가 될 수 있었어요."

레오가 이들 영화에만 출연한 건 아니다. 장 콕토 감독의 '오르페의 유언'(1960), 말런 브랜도 주연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 차이밍량 감독의 '지금 거기는 몇 시니'(2001) 등 숱한 명작들에 이름을 올렸다. 레오는 "수십 년 전 말런 브랜도가 '400번의 구타'에서 앙트완 드와넬을 연기한 저를 좋아한다며 꽉 끌어안아 주었다"며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한국 방문 자체가 처음인 레오는 이번에 두 편의 영화를 들고 왔다. 고다르가 친구 트뤼포에게 보내는 헌사인 '작은 독립영화사의 흥망성쇠'(1985)와 스와 노부히로의 신작 '오늘밤 사자는 잠든다'다. 지난해 죽어가는 루이14세의 모습을 엄청난 롱테이크로 선보였던 그는 신작에서 과거에 사로잡혀 사는 배우 장을 연기한다. 레오는 "죽은 옛 연인의 집에서 머물다 그곳에서 호러 무비를 찍으려는 아이들 촬영에 동참한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레오는 자신이 출연한 최고의 영화로 두 편을 꼽았다. 누벨바그의 거장인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와 장 외스타슈의 '엄마와 창녀'(1973). "지금도 사랑받는 두 편의 고전 영화를 남겼으니 나는 행운아"라며 그는 미소지었다. "제가 젊은 시절, 외스타슈 감독이 '레오, 너는 나보다 영화를 좋아해, 그 열정 안 바뀌었으면 좋겠어'라고 하셨어요. 정말 그래요. 저는 지금도 영화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웃음)."

[부산 =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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