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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이슈 무병장수 꿈꾸는 백세시대 건강 관리법

[건강한 가족] 암 환자 생존권 위협하는 건강보험 사각지대 사라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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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 림프구성 백혈병 치료

효과 좋고 독성 약한 항암제

건보 급여 대상 안 돼 비싸

기고 계명대 동산병원 혈액종양내과 도영록 교수
중앙일보

계명대 동산병원 혈액종양내과 도영록 교수






환자가 경제적 어려움이나 제한적인 치료 환경으로 인해 부담을 호소하거나 그로 인해 치료를 중단해야 하는 상황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낀다. 특히 가족 전체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의 이런 고충을 들을 때면 의사이기 전에 가족을 부양하고 책임지는 아버지 입장에서 환자의 고통과 절박함에 더욱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다.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다른 암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희귀암이다. 아시아에서는 상대적으로 발병률이 낮다. 국내에서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으로 진단받는 환자 수는 연간 100~130명 정도다. 진단된 환자의 25% 정도는 증상이 거의 없어 혈액검사 도중 림프구 수 증가로 우연히 질환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어 진행이 느린 림프구성 백혈병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질병이 진행되고, 처음 치료 후 3~5년 내에 50% 이상의 환자가 재발을 경험한다는 것이 해외 연구결과를 통해 알려져 있다. 특히 1차 치료에 실패한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 환자는 예후가 좋지 않아 치료와 재발을 반복하다 사망에까지 이르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현재 국내 건강보험제도에서는 재발한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가 매우 제한적이어서 의료진과 환자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필자의 환자 중에도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을 진단받은 40대 가장이 있다.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이 주로 60세 전후에 나타나는 것에 비하면 이 환자는 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에 발병한 경우다. 젊어서 발병했기 때문에 치료 옵션의 폭도 넓고 예후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병의 진행 속도나 치료 반응은 개인차가 존재해 단순히 연령만으로 규정할 순 없다. 게다가 애초에 재발도 잦은 병이고, 한창 활발한 경제활동을 통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시기여서 환자의 고통과 어려움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이 환자는 1차 치료 후 재발한 경우였다. 이미 치료에 한 번 실패한 터라 환자가 느끼는 불안감이 크다. 근데 현재까지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의 1차 치료나 재발 시 건강보험을 적용할 수 있는 치료제는 세포 독성이 높아 감염과 합병증 등 부작용 발생 위험이 커 치료를 지속하기 어렵다.

다행히 최근에는 우수한 치료 효과와 낮은 독성을 보이는 새로운 항암제가 출시됐다. 더욱이 이 치료제는 기존의 주사제가 아닌 경구제로 복약 편의성이 개선됐을 뿐 아니라 반복되는 입원 치료를 위해 휴직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사회 활동에도 지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 치료제는 아직 건강보험 급여가 되지 않아 환자 본인이 약가 전체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실상 대부분의 환자가 선택 가능한 옵션이 아닌 것이다.

백혈병도 이제 꾸준한 치료제 복용으로 만성질환처럼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일상생활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환자를 위한 최선의 치료제가 있음에도 급여 제한의 사각지대로 인해 접근이 쉽지 않다면 환자가 느낄 박탈감과 억울함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환자의 질병 치료를 위한 치료제의 개발도 중요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치료제의 공급과 활용을 가능케 하는 급여 또한 매우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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