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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편견 뒤집는 유쾌한 묘미 연극 `엠.버터플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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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치니의 '나비부인' 유쾌하게 전복시키는
-데이비드 헨리 황의 '엠. 버터플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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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테이지-90] "왜 중국 경극에서 남자가 여배우 역할을 하는지 아세요? 남자야말로 '진짜 여자'를 잘 알기 때문이지요."

무대가 밝아오고,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사랑의 이중창'이 녹음기로 들려온다. 그 위로 중국 전통 타악기 소리가 겹쳐진다. 두 음악이 섞여든다.

연극 '엠. 버터플라이'(M. Butterfly)는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과 1986년 프랑스 외교관 기밀누설 사건을 엮어낸 작품이다. 극작가 헨리 황은 1985년 5월 저녁 식사 후 우연히 갖게 된 대화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얻었다. 한 친구가 간첩이자 동시에 훗날 남자로 밝혀지게 된 중국 여배우와 사랑에 빠졌던 프랑스 외교관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느냐고 물었고 그는 뉴욕타임스를 뒤져 2문단 정도 크기의 기사를 발견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버나드 브리스코트라 불리는 외교관은 간첩 '여자친구'의 알몸(사실 남성이었던)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는 점을 밝히는 도중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저는 그 여자가 매우 수줍음을 탄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중국의 관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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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계 미국인인 헨리 황은 이것이 중국의 관습이 아니라는 것, 아시아 여성들이 연인들과 함께 있을 때 서양 여성들보다 더 수줍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 외교관이 한 개인과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라 환상 속의 전형적 유형과 사랑에 빠졌음에 틀림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서양인이 '동양'에 덧씌운 제국주의적 환상을 들춰내기로 마음먹는다.

'엠 버터플라이'는 1986년 현재 파리의 한 감옥에서 주인공 갈리마르가 자신의 20여 년간의 삶을 회고하는 독백 형식을 전체 틀로 하며 플래시백 기법으로 베이징과 파리에서의 삶을 보여주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비극으로 끝난 자신과 송의 이야기의 새로운 결말, 자신의 명예를 되살리고 마침내 그녀가 그의 품에 되돌아오는 결말로 이야기를 다시 쓰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푸치니의 '나비부인'은 중요한 텍스트다. 난봉꾼 미 해군 핑거튼을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그를 위해 결국 목숨까지 비치는 일본 게이샤 초초상의 순애보를 그린 이 작품은 아름답지만 사실 편견으로 가득 찬 사랑 이야기다. 프랑스 외교관이자 극의 주인공 르네 갈리마르는 자신을 '나비부인'의 남성 주인공 핑커튼에 베이징 오페라의 배우 '송'을 여성 주인공 초초상에 동일시하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에게 초초상은 조국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자신이 꿈에 그리던 이상향이다. '연약하고, 순종적이며 순애보를 아는 여성'. 자명하게도 나비부인은 '여성'이자 '동양' 그리고 '식민지' 등 제국주의 담론의 젠더화된 재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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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오페라 '나비부인'이 동양에 대한 서양의 환상이 오리엔탈리즘의 한 표현이라면 '엠 나비'는 그 오리엔탈리즘을 해체함으로써 동서양의 관계를 재정립하고자 한다. 여기서 '송'의 반전이 주요하다. 초초상과 동일시된 '송'은 사실 동양에 대한 편견과 여성에 대한 편견을 고스란히 연기하고 있는 간첩일 뿐이다. 게다가 르네 갈리마르는 그를 '진정한 여성'이라고 치켜세우지만 사실 그는 남성이다.

송은 가부장제 남성 욕망·환상의 대상, 혹은 이미지, 연기, 재현으로 존재하는 여성성을 그대로 이용하여 역공을 펼친다. 송이 가장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는 순간이 바로 그가 여성의 순종을 연기해 르네마르를 완전히 사로잡는 때라는 점은 유쾌한 아이러니다. 결국 극 말미 르네 갈리마르는 실상 자신이 나비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초초상처럼 사랑에 농락당한 사람이 바로 그 자신이고, 따라서 그 사랑을 악용한 중국 배우 스파이가 진짜 핑거튼이었던 것이다. 제목의 M. Butterfly는 프랑스어에서 여성(Madame)의 의미도, 남성(Monsieur)이 될 수도 있는 축약형으로 쓰여짐으로써 결말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극에서 정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이어지는 다음 장면이다. 르네 갈리마르는 스스로 나비부인의 옷을 입고 초초상처럼 사랑을 위한 자결을 택한다. 이 죽음을 끝끝내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려는 회피로도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비장미 넘치는 그의 자살은 범인을 밝히려는 의지를 굽히지 않던 오이디푸스가 사실 자신이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라는 잔혹한 현실을 대면하곤 스스로의 눈을 찔러 벌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이 가여운 남자의 처절한 몸부림이 오히려 자신이 꿈꾸고 믿어온 사랑을 지키려는 영웅적 몸부림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실제 헨리 황은 이렇게 첨언한다. "'엠 버터플라이'가 반미국적인 극, 서구가 만든 동양의, 남성이 만든 여성의 유형에 반대하는 통렬한 비난서로 여겨져 오는 데 안타깝다. 이 이야기는 동양의 신화, 서양의 신화, 남성의 신화, 여성의 신화, 이런 것들이 너무 깊숙이 우리의 의식에 침투해 있어서 국가와 연인 사이의 진정한 교류는 오로지 영웅적 노력의 결과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담았다."

국내엔 2012년 초연, 2014년 재연에 이어 세 번째 막을 올렸다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1관에서 개막해 12월 3일까지 공연된다. 르네 갈리마르 역에는 김주헌, 김도빈, 송 릴링 역에는 장율, 오승훈, 툴롱 역에는 서민성, 권재원, 친·스즈키 역에는 송영숙, 마끄 역에는 황만익, 김동현, 헬가 역에는 김유진, 소녀 르네 역에는 강다윤 등이 캐스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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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무대에 다시 오른 올해 공연에서 연출이 바뀌었다. 지난 두 번의 공연에서 김광보 연출이 동성애와 여장남자의 '섹슈얼리티' 측면을 부각시켰다면 새롭게 연출을 맡은 김동연은 '오리엔탈리즘'에 초점을 맞췄다. 대본을 보다 성실하게 읽어낸 느낌이다. 원래 축약됐거나 생략됐던 장면을 되살려 원작의 구조적·의미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모범적인 답안에 김광보 연출 때보다 극적 긴장감은 떨어지지만 보다 친절하고 지적으로 흥미로운 극이 됐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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