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9 (토)

트럼프 전세계에 "美와 北중 선택하라"…군사옵션外 가장 센 제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美, 독자 대북제재조치 발표

매일경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공개한 미국의 올해 다섯 번째 대북 제재의 메시지는 전 세계 금융기관들을 향해 '북한이냐 미국이냐 선택하라'고 강요한 것이다.

대통령 행정명령 형태로 시행된 이번 대북 제재는 북한과 의도적이고 상당한 규모의 거래가 드러난 제3국 금융기관은 미국 금융기관에서 계좌 개설과 유지가 제한되고 환계좌 또한 차단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과 거래하면 사실상 미국 금융시스템에서 퇴출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과 거래하든지, 북한을 돕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한 것은 이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거래하려면 직간접으로 미국 금융망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므로 이번 대북 제재 조치는 세계 모든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북한과의 거래를 중단하라는 선고나 마찬가지다.

이번 제재가 기존의 미국 독자 제재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북한과의 불법 거래가 아닌 정상적인 거래도 제재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기존의 제재는 불법거래 혐의가 드러난 개인과 기관을 제재 리스트에 추가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 제재는 북한과의 거래 사실이 확인되면 미국 금융기관과의 거래를 즉각 중단시킬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군사적 옵션을 제외한 경제적 압박 수단으로는 마지막 제재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란식 세컨더리 보이콧'에 거의 근접했다는 분석도 있다.

금융 제재 외에도 북한의 항구와 공항을 다녀온 선박과 비행기에 대해 180일간 미국 입항을 금지시켰다. 북한에 기항했던 배와 물건을 바꿔 실은 선박도 마찬가지로 180일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이는 북한 무역활동의 대부분이 해운물류에 집중돼 있음을 염두에 둔 일종의 북한 무역 봉쇄령이다.

행정명령은 또 재무부와 국무부가 협의해 북한의 건설, 에너지, 어업, 정보기술(IT), 의료, 광업, 섬유, 운송 부문 산업 활동과 연루된 기관과 개인을 제재하도록 했으며, 북한의 공항, 항구, 육상 통관소를 소유하거나 운영하는 데 관련된 기관과 개인도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 "북한과의 금융거래 차단과 함께 교역도 가로막아 북한으로 들어가는 자금줄을 완전히 틀어막겠다"는 것이 백악관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전 세계 정상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유엔 총회라는 기회를 활용해 대북 제재를 발표했다는 점과 담당 장관이 아닌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제재 사실을 공개했다는 점에서 대북 압박에 대한 미국의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의 새 행정명령이 인류에게 알려진 가장 치명적인 무기를 개발하려는 북한에 대해 수익의 원천을 차단할 것"이라며 "수치스러운 관행에 대한 관용은 이제 끝나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직면하게 될 압박의 효과도 최근의 제재와는 크게 다를 것으로 전망된다.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대한 제재로 북한 비밀자금 2400만달러가 동결되고, 다른 제3국 은행들까지 북한과 거래를 기피하면서 북한의 해외 송금과 무역 결제가 마비됐던 전례가 재연될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

당시 미국 재무부는 북한과 6자회담을 진행 중이던 국무부에 통보하지 않고 BDA를 북한 돈세탁 기관으로 지정했다. 따라서 김정일 통치자금 2400만달러가 동결됐고 중국 은행 20여 개가 북한과 거래를 끊었다. 북한은 거세게 반발했고 6자회담은 표류했다.

하지만 이번 제재를 소극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다. 북한 경제에 정통한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미국과 금융 거래를 하는 중국 은행들은 움츠러들 수 있겠으나 실제 북한과 거래를 하는 중국과 러시아 기업은 미국과 거래량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제재가 전 세계 금융기관과 기업을 상대로 한 것이지만 중국을 집중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북한 대외 무역·금융 거래의 대부분을 중국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인민은행이 일선 은행에 북한과의 신규 거래를 중단하도록 했다는 사실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높이 평가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인민은행의 대북 금융제재를 공식 부인하고 나서면서 이번 조치의 진위에 논란이 일고 있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정례 브리핑에서 관련 보도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어떤 부분이 사실과 다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과 핵 프로그램에 관한 유엔 안보리 결의를 엄격하고 정확하게 이행하고 있다"고만 말하며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인민은행 홈페이지에는 관련 조치에 대한 통지를 찾아볼 수 없는 상태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서울 = 박태인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