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사람들은 흔히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잘사는 나라 사람들보다 건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의료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낙후된 지역에 살며, 아파도 치료비 낼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나라 안에서도 부유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보다 더 건강하고 오래 살 것이라 생각한다. 이 말은 전부 사실일까?
이러한 인식은 대체로 맞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난한 나라에 살고 돈이 없는 처지라면 돈은 매우 중요한 요소일 수 있지만, 비교적 부유한 나라라면 '다른 요인'들이 더 중요해진다. 미국은 남성 성인사망률 지표가 미국보다 양호한 49개국 대부분보다 부유하며, 미국보다 남성 성인사망률이 높은 144개국은 모두 미국보다 가난하다. 하지만, 러시아는 기니비사우와 같은 아프리카국가들보다 소득이 훨씬 높음에도 사망률은 비슷하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한국은 경제 규모면에서 세계 11위(2016년 기준)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1조 4112억 달러로, 10위인 캐나다(1조 5298억달러) 다음인 것으로 집계됐다. 또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45위(2만7600달러)다.
국가 단위의 삶의 수준으로 따진다면 상당수 다른 나라들보다 비교적 높은 순위를 유지하는 편이다. 한국은 6·25전쟁 이후 급속한 경제발전을 경험하면서 의료수준 역시 높아졌다. 하지만 2017년을 살아가는 한국민이 체감하는 경제사정과 의료시스템 수준은 과연 만족스러울까? 안타깝게도 서민 경제는 1999년 외환위기 이후 오랜 정체기에 빠져 있으며, 의료시스템의 지속가능성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고령화 저출산 문제, 저성장 장기침체,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기대수준 증가 등에 부딪혀 위협받고 있다. 의료시스템은 효율적으로 개편될 수 있도록 국민의 인식확산, 정책 개입을 통한 질적 향상이 요구된다.
이는 과거와 비교해 본다면 상대적인 것이다. 예전보다 훨씬 잘 먹고 잘 살고 있지만, 여전히 불만족스럽다. 원인은 앞서 말했듯 '다른 요인'에 있다. 그 다른 요인은 불평등이며 이를 조장하는 사회에 책임이 있다. 한 사회가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가는 그 사회의 건강 수준에 막대한 영향을 가져다준다.
가난이 아니라 불평등이 원인이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의 역학 및 공중보건학 교수 마이클 마멋(72)은 평등한 사회에서는 가난해도 병들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의과대학 재학 당시 사람들을 병들게 하는 요인, 건강하게 살 수 없게 하는 요인이 한 사람이 나고 자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그 환경과 여건은 다시 그 사회의 권력, 돈, 자원의 불평등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뒤부터 질병의 원인을 탐구하고 환자를 치료하는 것보다 질병의 '원인의 원인'을 찾아내는데 주력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학문이 바로 역학(epidemiologist)이다. 아직 생소하지만, 그만큼 의미 있는 고찰을 시도한다. 질병을 일으키는 사회 여건을 탐구하고 그 여건을 어떻게 하면 개선할지 골몰한다. 의사, 통계학자, 인류학자가 머리를 맞대 생활 장소와 양태에 따라 집단의 건강 상태가 어떻게, 왜 다른지 연구한다. 저자는 이 분야 세계 최고의 권위자다. 책은 그가 역학자로서 이뤄낸 수많은 연구 성과의 보고다. 관련한 여러 낙관적 정책들의 실효성과 성과를 제시한다. 사회 여건을 변화시키면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출발선에서의 평등이 보장될 수 있도록 영유아기 성장 발달을 지원하는 사회(4장),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고 개인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질 수 있게 돕는 사회(5장), 양호한 노동 여건과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는 사회(6장), 노년의 우아한 생활 여건을 보장하는 사회(7장), 사회적으로 살기 좋은 지역공동체가 유지되는 사회(8장)에서 비로소 개인의 건강과 사회의 건강 형평성이 달성될 수 있다고 말한다.
건강에 관한 오랜 통념은 깨졌다. 건강과 건강 형평성의 문제는 개인이 아닌 사회에 책임이 있다. 이제껏 건강 불평등 문제는 의료 접근성이나 금연, 금주, 식단 조절 등 질병 예방을 위한 개인의 행동 교정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지만, 그 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의미 있는 변화를 위해서는 더 큰 차원의 변화가 필요하다. <마이클 마멋 지음/김승진 옮김/동녘/2만2000원>
김세영 기자 ksy1236@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