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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강력한 보컬·탁월한 연주 합쳐진 美대표 좌파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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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스쿨 오브 락-24] 지난번 절창 사운드가든(Sound Garden)의 크리스 코넬(Chris Cornell)의 자살을 주제로 다루며 그가 속해 있었던 밴드 오디오 슬레이브(Audioslave)에 대해 다룬 바 있다. 이 밴드는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RATM)'이란 밴드에서 보컬이었던 잭 데라로차(Zack de la Rocha) 대신 코넬이 들어온 형태였는데, 이번 회에서는 RATM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코넬이 단순히 RATM의 보컬 자리를 이어받은 개념은 아니었다. 오디오슬레이브와 RATM의 음악 스타일은 사뭇 달랐다. 따라서 오디오슬레이브가 RATM의 이름을 물려받았다는 식의 추론은 곤란하다. 그냥 보컬을 제외한 다른 멤버가 공교롭게 같다는 쪽이 더 어울리겠다. 오해를 덜기 위해 사족을 붙여 설명했다.

RATM은 단연 한 시대를 풍미한 밴드다. 음악적으로 그리고 음악 외적으로 이들은 이슈를 몰고 다니는 이야깃거리가 되는 밴드였다. 신념을 담아 행동한 결과로 음악을 만들었고, 본인들이 얘기한 메시지를 말로만 전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듯이 행동했다. 겉과 속이 같은 밴드였다고 할까. 이들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단순히 음악만 들어도 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음악을 잘하는 매력이 있는 밴드다.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영어로 랩을 하니 알아듣기 힘들다) 보컬 데라로차의 목소리를 들으면 "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맛깔나게 잘 내뱉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니 언어를 초월해 에너지를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한 멤버라 하겠다.

밴드 이름만 들어도 대략 이들의 성향이 나온다. 기계에 대한 분노. 여기서 기계라는 것은 굳이 설명하자면 '자본주의의 총아' 정도로 해석될 수 있겠다. 그렇다. 이들을 설명하면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수식어가 '좌파 밴드'다. 그만큼 이들의 메시지에는 미국 정부(특히 공화당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고,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에 대한 분노, 그리고 시스템을 돌아가게 하는 근본 원리에 대한 질문이 가득 차 있다.

멤버들 면면을 뜯어보면 다들 어린 시절 상처가 있다. 상처를 바라보고 대응하는 인간의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표준적인 방식(?)은 아마도 잊어버리는 것일 테다. 한때의 아픔은 그때의 기억으로 남기고, 굳이 나쁜 기억 가져가지 않고 좋은 생각만 하자는 쪽이다. 상처 자체에 함몰되어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 상처가 본인이 감당하기에 너무 가슴 아픈 것이었을 때 사람은 쉽게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아 상처를 맴돌며 살아가는 불행한 삶을 살게 되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상처를 자양분 삼아 앞으로 달려갈 수 있는 에너지로 삼는 것이다. 사실 뭐가 정답인지 단 하나의 해법은 없다. 그리고 상처의 종류가 어떤 것이었느냐에 따라 사람이 방식을 선택하기보다는 상처가 사람의 삶의 궤적을 고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가족을 강도에게 잃었는데, 친구가 "넌 이번 일로 좌절하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라고 충고한다면 이건 잘한 일일까 아닐까. 결국은 상처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심정과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섣부른 충고는 사실 안 하니만 못하다).

보컬인 데라로차는 멕시코계 미국인이다(아버지가 멕시코계였다. 어머니는 백인).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했다. 학자였던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다. 어머니가 직장을 서부로 옮기면서 데라로차도 따라가게 된다. 여기서 어린 시절 끔찍한 트라우마로 남을 인종차별을 경험한다. 그가 살던 곳은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이 사는 곳으로 멕시코 출신들은 주로 허드렛일을 하던 곳이었다. 그는 학창 시절 왕따를 당하며 돌파구를 랩을 비롯한 음악에서 찾게 되고, 결국 이걸 직업으로 삼게 된다.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Tom Morello)는 아버지가 케냐 출신 공무원, 어머니가 백인이었다. 아버지가 모렐로가 어린 시절 케냐로 돌아가고 백인 어머니가 그를 홀로 키운다. 그 역시 어렸을 때 인종차별을 경험한다. 백인 소녀가 모렐로를 보고 "이 깜둥아"라고 놀리자 그 말 뜻을 몰랐던 모렐로가 어머니에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어머니는 어린 모렐로에게 미국의 유명한 흑인 운동가 '맬컴 ×'의 저서를 보여줬다고 한다(어머니의 처사에 내공이 묻어난다). 아버지가 유색인종, 어머니가 백인이라는 코드도 데라로차와 꼭 닮았다. 각자 속한 밴드에서 활동을 하던 이들은 로스엔젤레스(LA)에서 운명처럼 만난다.

모렐로와 데라로차에 드러머 브래드 윌크(Brad Wilk), 베이시스트 티미 시(Timmy C)가 힘을 합쳐 RATM이 결성된다. 카세트테이프를 제작하며 인디신에서 활동해 인기를 모으던 그들은 1994년 11월 그 유명한 데뷔앨범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을 내놓는다.

앨범 표지부터 파격이었다. 1963년 사이공의 미국 대사관 앞에서 분신 자살(소신공양)으로 생을 마친 고승 틱꽝득(釋廣德)의 사진을 전면에 내건다. 당시 틱꽝득은 남베트남 정부의 불교 탄압정책에 항의하고, 미국의 제국주의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거센 불길 속에서도 가부좌한 자세를 흐트러트리지 않으며 담담하게 죽음을 맞는 사진에 전 세계가 놀랐다. 때로는 백마디 천마디의 말보다 사진하나가 훨씬 많은 메시지를 전한다. 이 사진을 전면에 내건 앨범에 어떤 가사를 담았을지는 안 봐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앨범에 실린 대표곡 킬링 인더 네임(Killing in the name)의 가사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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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se who died are justified, for wearing the badge(배지를 단 놈들은 그렇게 죽은 사람들을 정당화하지)/they're the chosen whites(그들은 선택된 백인들이야)/You justify those that died by wearing the badge(배지를 단 놈들에게 죽은 사람을 너도 정당화하고 있잖아)/they're the chosen whites(그들은 선택된 백인들이야)

중략

And now you do what they told ya, now you're under control(그리고 넌 그들이 얘기한 대로 하지, 넌 통제 안에 있어)

중략

Fuck you, I won't do what you tell me(×발, 난 니들이 시키는대로 안 할 거야)/Mother fucker~~(××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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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곡만 들어도 이들이 노래에 어떤 가사를 입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메시지를 증폭하는 것은 데라로차 특유의 피끓는 보컬이다. '어떻게 그런 목소리가 나올 수 있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분노를 정제해 농축시킨 목소리로 따발총처럼 단어를 쏟아낸다. 매우 격렬하고 선동적이다.

하지만 이들이 선동적인 메시지로만 무장한 밴드였다면 이렇게까지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강력한 메시지는 이들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단면일 뿐이다. RATM을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는 모렐로의 창의적인 기타다. 그는 '지미 헨드릭스만큼 기타를 창의롭게 연주하는 기타리스트'로 유명한데, 그에게 있어 기타는 단순히 현을 튕기거나 긁어 소리를 내는 수단이 아니다. 그는 때로는 턴테이블 돌리듯이 현을 비벼 소리를 내거나 연필을 사용해 기타줄을 튕기거나 하는 기괴한 방식으로 기존에는 들어보지 못한 소리를 만들어 연주한다. 여러가지 이펙터를 섞어 그만의 소리를 창조해 '톰 모렐로' 스타일의 연주 방식을 개척했다. 세상의 주목을 받으려면 단순히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존에 없었던 것이어야 한다. 최근 범람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봐도 심사위원의 잣대는 거의 일치한다. '흔하냐 흔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노래 잘하는 사람은 세상에 널렸다. 하지만 기존에 없는 목소리로 자신만의 솔(soul)을 노래하는 사람은 드물다. 경쟁을 거쳐 결승에 올라가는 사람들은 거의 본인의 개성이 두드러진 사람들이다. 모렐로는 기존에 없던 방식으로 기타 연주를 했다는 점에서 세상의 주목을 끌었다. 또 하나, 그가 명문 하버드대학 출신이라는 점도 밴드의 개성과 맞물려 그를 더욱 빛나게 했을 것이다. 그는 홀어머니 밑에서 그리 행복하지 않은 청소년기를 보내면서도 "좋은 대학에 가서 음악을 하면 너를 세상에 알리기 훨씬 쉬울 것"이라는 어머니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타고난 머리가 좋았다는 뜻도 되겠다.

첫 번째 앨범을 성공시킨 RATM은 4년 만인 1996년 4월 두 번째 앨범 '에빌 엠파이어(Evil Empire)'를 낸다. 악의 제국이란 뜻인데, 누굴 말한 것일까. 그렇다 미국이었다. 원래 이 단어는 냉전 시절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소련을 가리켜 쓰던 단어였는데, 이들은 미국을 악의 제국이라 부르며 타이틀을 붙였다. 그리고 악의 제국 미국에서 앨범이 발매되자마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랐으니 미국도 참 알 수 없는 나라다. 1999년에는 세 번째 앨범 '더 배틀 오브 로스앤젤레스(The Battle of Los Angeles)'가 나온다. 이 앨범에서는 '게릴라 라디오(Guerrilla Radio)'란 곡이 히트했는데, 이 곡에서는 조지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을 놓고 '마약왕의 아들(son of a drug lord)'이라 부르며 조롱하기도 한다. 같은 해 열린 우드스톡 록 페스티벌에서는 미국 성조기를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벌인다(우리로 치면 지산 록페스티벌에서 태극기를 불태운 상황이다).

이 앨범이 이들의 마지막 앨범이었다. 이후 이들은 리메이크 앨범 하나를 더 내고 휴지기에 들어갔고, 데라로차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는 전술한 대로 오디오 슬레이브 활동을 했다. 데라로차는 멕시코 민속 음악에 심취했다고 한다.

추천곡은 '킬링 인더 네임' '게릴라 라디오'를 비롯해 노 유어 에너미(Know Your Enemy), 프리덤(Freedom), 슬립 나우 인더 파이어(Sleep now in the fire) 등을 들고 싶다. 슬립 나오 인더파이어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곡 말미에 엄정화의 노래 포이즌(Poison)이 들어가 있다. 녹음 중에 한인 방송 주파수가 잡힌 게 그대로 녹음됐다고 한다. 이를 발견한 RATM은 이를 알고도 빼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의 음악을 처음 듣는 사람은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피끓는 목소리와 그루브 넘치는 음악에 홀랑 빠져 자칫 하늘로 주먹질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르니.

[홍장원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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