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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커버스토리 - 나도 선생님인데]나는 선생님인데…나도 선생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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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교사 “불공평에 익숙해진 내가 평등을 가르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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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생이 학교 교무실 문을 열고 ‘선생님’을 부른다. 교무실 안에 있던 모두가 고개를 돌리고 쳐다본다. 학생들에게는 똑같이 ‘선생님’으로 불리지만, 이들은 모두 같은 ‘선생님’이 아니다. ‘선생님’은 정규직 교사와 비정규직 교사로 나뉘고, 비정규직 교사는 또다시 3개월짜리와 11개월짜리, 1년짜리 고용형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10년차 스포츠강사 정동창씨(43)는 ‘학생들의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선생님’이다. 스포츠강사는 담임교사의 책임하에 체육수업을 협력해 지도하는 보조교사다. 계약 기간이 11개월이라 매년 3월 채용되고 이듬해 1월 계약이 만료돼, 2월에 치러지는 졸업식에 참석할 수 없다. 따로 시간 내어 간다고 해도 졸업식장에서 소개받지 못하는 선생님이 된다.

영어회화 전문강사인 안인숙씨(45·여)는 ‘5년차가 되지 못하는 선생님’이다. 안씨는 이 학교에서 4년째 근무하고 있다. 신규 채용 후 매년 재계약을 해왔지만, 내년에도 이 학교에 근무하려면 다시 원서를 내고 수업지도안을 작성하고 시범강의를 해야 한다. 지금은 여느 교사들처럼 정규 영어수업을 하고 있지만, 내년에는 응시생 자격으로 동료교사들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안씨에게는 굴욕적인 일이다.

학교는 공공부문에서 가장 많고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이 일하는 곳이다. 아이들에게 ‘평등’의 가치를 가르치는 공간이지만, 막상 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삶은 차별과 불균형에 익숙해져 있다. 기간제 교사 윤진서씨(45·가명)는 힘들거나 귀찮아서 정교사들이 기피하는 일을 자진해서 도맡아 한다. 1년 단위로 계약하는 그는 “매일매일이 ‘해고’와 ‘재계약’의 갈림길에서 평가를 받고 있는 느낌이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이 ‘평등’의 감각을 배울 수 있을까.

비판의 화살은 ‘기득권’인 정규직 교사를 향하지만, 정규직 교사들도 ‘비정규직 백화점’이 돼버린 학교 현장을 이대로 둬선 안된다고 생각하는 건 마찬가지다. 다만 그 해결책은 이명박 정부 때 기형적으로 도입된 영어회화전문강사나 스포츠강사직을 폐지하고, 대신 교원 전문 양성 과정을 거친 정규직 교사 채용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정규직 교사인 류가영씨(39·가명)는 “‘통합교육’이라는 초등교육 원칙을 훼손한 ‘전문강사’ 직종은 도입부터 반대해왔다”면서 “그들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면 지금의 잘못된 제도를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10년 가까이 학교 구성원으로 일해온 전문강사들로서는 자신들을 학교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정규직 교사들의 말에 동의하지 못한다. 정규직 교사들은 기간제 교사에 대해서도 임용시험제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정규직화는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하지만, 기간제 교사들은 “정당하게 면접 보고 공정하게 능력을 인정받아 채용된 건데, 염치없는 사람 취급받아 화가 난다”고 반발한다.

학교 비정규직 문제는 그때그때 다른 주먹구구식 교육 정책, 기형적으로 높은 임용시험 경쟁률, 비정규직 쪼개기 계약 등 여러 모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고차방정식’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학교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은 학교 현장에 대한 면밀한 고민 없이 성급히 접근했다가 변죽만 울린 채 끝나버렸다.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 다른 ‘교육’과 ‘형평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한 지붕 네댓 가족’의 학교 공동체는 앞으로 어디로 가게 될까.


▶한 지붕 아래 정교사·기간제·각종 강사들…학교는 ‘현대판 신분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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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교무실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교사들은 제각각 수업 준비로 분주했고 안인숙씨(45·여)도 여느 때처럼 수업교재를 챙겨 교무실을 나섰다. 그러나 안씨의 마음에는 시퍼런 비수가 꽂힌 듯했다. 이날은 교육부가 ‘교육 분야 비정규직 개선 방안’을 발표한 날이었다. 영어회화전문강사(이하 영전강)인 안씨는 무기계약직 전환을 요구하며 관련 집회에도 매번 참석했다. 그러나 이날 발표에서 영전강은 전환 대상에서 제외됐다. 5만5000여명의 비정규직 교원 중 유치원 돌봄교실·방과후 강사 1034명만이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으로 발표됐다. 교육부는 “교육 현장의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영전강을)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안씨는 절망했다. “지난 8년간 누구보다 열심히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교육안정성을 저해하는 존재라니요. 어떻게 이런 상처를 줄 수 있는지 정말 배신감이 듭니다.” 그러나 절망은 비정규직인 안씨만의 몫이었다. 대부분의 정규직 교사들은 영전강 정규직화에 반대했다.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소속 회원들에게 반대 서명을 돌렸다. 안씨는 “다른 학교 영전강 선생님은 친하게 지내던 정교사 선생님이 자신도 속해 있는 단톡방에서 반대 서명을 돌리는 것을 보고 크게 상처받았다고 했다. 어떤 학교에서는 회의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서명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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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씨는 하루 8시간 근무한다. 수업시수는 주당 18~22시수다. 정교사와 다를 바 없이 일하지만, 월급은 221만5000원. 처우개선수당이나 명절상여금은 물론 급식비도 받지 못한다. 정교사는 매달 13만원의 급식비를 받고 일부 비정규직도 5만~8만원의 급식비를 받지만 안씨에게 돌아오는 급식비는 없다. 안씨와 같은 비정규직 교사의 일상은 눈치 보기의 연속이다. “처우가 낮아도 영전강은 정교사가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도맡아 하는 경우가 많아요. 학교와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니까 눈치를 볼 수밖에 없거든요.” 가장 관리하기 어려운 학년인 5~6학년 강의는 보통 영전강의 몫으로 돌아온다. 안씨는 지원하는 교사가 없었던 주 2회 부진아 지도를 자진해서 하고 있다. 정교사들이 꺼리는 일이 결국 비정규직의 몫으로 떠넘겨지는 건 교무실 내에 자연스러운 흐름이 됐다.

■ 물음표가 찍힌 광장의 구호

초등학교 정교사 류가영씨(39·가명)는 체육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교무실에 앉아 있는 동료교사에게 결국 한마디를 했다. “선생님, 들어가셔야죠. 우리 좀 편하자고 안 들어가는 게 말이 돼요?” 스포츠강사가 보조교사 형태로 체육수업에 들어오게 되면서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체육시간은 “매번 양심을 저울질하는 시간”이 됐다. 법규상 스포츠강사는 정교사를 보조해 협력수업을 하게 돼 있지만 체육수업을 주도하는 건 대개가 스포츠강사다. 심지어 스포츠강사에게 몽땅 떠맡기고 수업을 안 들어가는 교사도 있다. 류씨는 이런 식으로 교육 현장을 왜곡시키는 보조강사 제도가 마뜩잖다. “스포츠강사 중에는 교사자격증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전혀 상관없는 전공자가 체육지도사 자격증만 따서 들어온 경우도 있어요. 스펙트럼 자체가 다양하다는 것은 검증이 안됐다는 겁니다.”

류씨는 영전강과 스포츠강사의 무기계약직 전환에 반대한다. 지난 촛불집회 때 광장에서 들었던 손팻말에는 “교육철폐 청산! 노동존중 평등세상을 위해!” “새로운 교육 더 나은 세상, 적폐청산 교육체제 개편!”이라는 말이 앞뒤로 적혀 있었다. 광장에서 “노동존중 평등세상” 구호를 외칠 때만 해도 이 말은 당연하고 쉬웠다. 그러나 광장이 아닌 교육 현장에서 이 말은 물음표로 바뀌었다. 류씨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외치는 건 어쩌면 쉬웠다. 어차피 이뤄지기 어려우니까”라면서 “그런데 이게 당장 나의 문제가 되니 참 어렵다. 그래도 교육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영전강과 스포츠강사 제도를 도입할 때부터 류씨는 이 제도에 반대했다. 비정규직을 양산할 게 불 보듯 뻔했고 교육 현장을 왜곡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적폐청산을 한다면 적폐 이전으로 돌아가는 게 맞다는 생각이다. 류씨에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비정규직 개개인의 정규직화가 아니라 비정규직 직종의 폐지를 의미했다. “무기계약직이라는 고용형태로 직종이 남겨지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에요. 더 큰 불씨를 남기는 거죠. 낮은 자격 요건으로 현장에 들어온 후 무기계약직이 되면 다음에는 정규직화까지 요구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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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씨는 교무실의 민주주의는 교사들의 단일한 정체성이 전제될 때 가능하다고 본다. “모두 정규직이고 교대 출신이어서 내가 저 교사의 위치에 갈 수 있고 저 교사가 나의 위치에 올 수 있을 때 민주적인 소통으로 협력이 가능하고 예민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다고 봐요. 누구는 정규직, 누구는 무기계약직, 누구는 비정규직 이렇게 구성돼 있으면 민감한 신분 차로 의사소통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류씨는 오랫동안 일해온 영전강·스포츠강사는 학교 무기계약직이 아닌 다른 일자리 형태로 이들의 고용을 보장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는 뽑히는 게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류씨는 전문강사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하더라도 교원양성 과정을 밟지 않은 이들과 학교에서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관계로 일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 소개받지 못하는 선생님

스포츠강사 정동창씨(43)는 올해로 10년차지만 교무실에서 언제나 벽을 느낀다. 10년 전보다 나아지긴 하지만 여전한 거리감이 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교무실에 제 책상도, 컴퓨터도 없었어요. 그게 왜 필요하냐면서 안 줬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정씨가 쓸 책상과 컴퓨터가 주어지기는 했지만 교무실 내에서 교사들 간의 거리감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정교사들은 스포츠강사라는 존재가 자신들의 수업부담을 경감시킨다는 점에서는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우리 존재가 후배들의 앞길을 망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정씨는 10년을 한 직종에서 일해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하다. 10년의 경력만으로도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도 체대 졸업했고 교사자격증과 체육지도사 자격증 다 있어요. 또 매달 스포츠강사들이 모여서 수업 연구하는 것도 꼭 참여하고요. 어떤 수업을 할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재미있게 수업을 들을 수 있을까 고민해온 게 벌써 10년이에요. 아이들 다루는 법이라든지 10년 동안 쌓아온 노하우가 있어요. 학교에서 일하는 게 임용이 다는 아닌 거 같은데 말이에요.”

정씨는 2월이면 사라지는 선생님이다. 스포츠강사는 11개월 단위로 계약을 해 매년 3월 채용되고 매년 1월에 계약해지된다. 학교에 나가지 않는 2월은 그에게 가장 바쁜 달이다. 주로 스키장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시에 3월에 새로 들어갈 학교를 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2월엔 언제나 학교 밖에 있었기 때문에 가르쳤던 아이들 졸업식에는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다. “스포츠강사 중에 일부러 찾아가는 선생님들도 있다고 하는데 전 가고 싶지 않더라고요. 졸업식에서 소개받지 못하는 선생님이거든요.” 내년 2월에는 좀 달라질 수 있을까라고 기대를 해봤지만 전환심의위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스포츠강사는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됐다. 전환심의위 논의는 예상치도 못한 곳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실체도 불분명한 사회서비스공단인가를 만들어서 간접고용 형태로 파견노동을 시키겠다는 안이 심의위에서 나왔어요. 노동의 대가를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데 심의위원회가 스포츠강사를 해고하고 불법파견하는 식으로 전환하려 한다는 생각이 드니 속이 터졌어요.”

정씨는 하루 8시간 근무하고 일주일 21시수의 수업을 소화하지만 월급은 세금 떼고 나면 140만원 남짓이다. 10년 전 급여에서 5% 오른 수준이다. 방과후 수업까지 빡빡하게 집어넣어 일주일에 50시수를 소화하면 소득을 벌충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때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정씨는 2년 전 방과후 수업을 맡지 못하자 퇴근 후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침에 바로 학교로 출근하는 생활을 했다. 다음해에 채용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더 눈치껏 일해야 한다. “어떤 학교는 교장이 이사하는데 도와달라고 하더라고요. 또 어떤 교사는 스포츠강사에게 밥 한끼 살 테니 아들 체대입시 과외 좀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거절할 수 없죠. 평판이 밥줄이니까요.”

■ 형평성, 민주주의 낯선 단어들

15년차 중등 기간제 교사인 윤진서씨(45·가명)는 지난 2개월 동안 교무실에서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7월20일 학교 비정규직 교원 고용안정 방안 마련이 발표되자 기간제 교사들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기 때문이다.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는데, 교무실 선생님들이 ‘너도 정규직화 원하는 거 아냐’라고 묻는 시선으로 보는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찝찝했어요. 정규직을 원한 적도 없는데 저를 ‘무임승차’하려는 사람처럼 볼까봐요. 기간제 교사들 중 낙하산 타고 들어온 사람들도 있지만 전 정당하게 면접 보고 공정하게 능력을 인정받아 기간제 교사로 채용됐어요.” 동료교사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한 정규직 교사가 “과거에 국립사범대 졸업자 중 교원 미임용자 일부도 무시험으로 채용된 적이 있는데, 경력 있는 기간제 교사는 그 사람들보다 더 채용할 자격이 되는 거 아닌가”라고 물었다. 윤씨는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어 못 들은 척하고 밥만 먹었다.

기간제 교사 정규직 전환 이야기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윤씨는 ‘형평성’이라는 단어가 혼란스러웠다. 이미 학교 현장에서는 ‘형평성’이라는 단어가 뒤죽박죽돼 있었다. 기형적으로 높은 임용 경쟁률,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들, 기간제 채용 과정의 모순들, 기간제 교사에게만 몰리는 귀찮고 어려운 업무들…. 기간제 교사도 1년차부터 10년차, 15년차 등등 다양한데 기간제 교사를 정규직화한다면 어떤 형식으로 할지, 수십대 일의 기간제 교사 채용 문을 뚫지 못해 노량진으로 돌아선 임용고시생들의 문제는 어떤 형평성의 잣대로 균형을 맞출 수 있을지, 복잡하게 얽힌 현장의 모순을 어떻게 풀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실현할 수 있을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만약 공정한 방식을 전제로 기간제 교사 대상의 정규직 채용경쟁이 실시된다면 시험에 한 번 응해볼까라는 상상도 해봤지만 이후에 ‘기간제 출신 정교사’라는 꼬리표만 붙지 않을까 싶어져 찜찜하기도 했다.

▶비정규직 잘못도 교대생 잘못도 아닌데…정부가 되레 갈등 부추긴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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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저런 생각 끝에 다다르는 건 결국 내년에 다시 채용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요구가 경력 많은 기간제 교사들에게 오히려 불이익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 “기간제 교사들이 자꾸 정규직 요구한다고 내년에 경력 많은 사람 안 뽑으려고 할까봐 걱정돼요. 이런 고민들, 이런 상황들이 치사하게 느껴져 지금이라도 다시 임용시험을 볼까 싶어서 교육학책을 샀어요. 차라리 내년에 시험을 볼까 고민 중이에요.”

5년차 정교사인 강지우씨(35·가명)도 요즘 들어 ‘형평성’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는 건 마찬가지다. 자신도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며 촛불을 들었지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왠지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었다. 그거야말로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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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안정을 보장받기 위해 임용시험을 본 것은 강씨 인생에서 최대의 모험이었다. “제가 시험볼 때 경쟁률이 45 대 1이었어요. 한 고사실에서 한 명의 합격자도 안 나올 수 있다는 거죠. 이런 경쟁률에서 열심히 하기만 하면 언젠가 붙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시험 준비하긴 힘들어요. 불안한 미래를 감내하고 시험을 보는 거죠.” 강씨는 3년 만에 임용에 합격했다. 연수원에서 만난 다른 합격자는 7년을 준비했다고 했다. “안정된 직장을 얻기 위해 불투명한 미래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선택을 한 거예요. 기간제 선생님들이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그 선생님들은 다른 삶을 선택한 거잖아요. 그간의 사회적 합의를 깨려는 건 임용을 통과한, 또 임용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박탈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임용시험은 ‘흙수저’였던 강씨가 그나마 공정하게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 침묵 속 전쟁, 아이들에게 전해줄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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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개월도 교무실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관련해 쏟아지는 기사나 댓글들과 달리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일부러 이야기를 피했다.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분위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도 이번 사태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제로섬 게임처럼 비치면서 양쪽 다 모두 적잖은 내상을 입었다. 스포츠강사 정동창씨는 “정부가 비정규직을 양산해놓고 ‘나 몰라라’ 한 채 사람들만 부추겨서 갈등하고 충돌하게 한 것 아닌가 싶다”며 “이 부분을 책임질 것은 정부다. 우리 비정규직 잘못도 아니고 교대생 잘못도 아니다. 입장이 모두 다른데 정부에서 아무런 방침도 내놓지 않고 갈등만 유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규직이지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찬성하는 초등 정교사 조휘연씨(29)는 “이번 논란은 강요된 경쟁하에서 빼앗긴 자들의 다툼이라는 느낌이 든다. 과도하게 신규 채용 정원은 줄이고, 교원양성 과정은 엉망으로 해놓고, 학령인구는 추산도 제대로 안 하고,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정규직이나 구직자의 이익과 충돌하는 것처럼 구도를 만들었다”면서 “문재인 정부가 흔쾌히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고 생각한다. 광장에서 촛불 들고 외쳤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더 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촛불 때 주어진 의제인데 지금의 갈등을 잘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동창씨는 “예전 학교에서 동아리 아이들을 데리고 밥 먹는데 어떤 아이가 ‘선생님 비정규직이잖아요. 저희도 알 거 다 알아요’라고 말했다”면서 “그래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뭐냐니까 ‘시험을 통과한 것과 통과하지 않은 거’라고 했다”며 씁쓸해했다.

조휘연씨는 “학교라는 공간이 아이들에게 거짓말하기 딱 좋은 곳이다. 구직난에 침묵하거나 공부하게 만들려고 열심히 공부하면 잘살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질 좋은 직업을 얻는 건 한 반에 두세 명뿐이다. 나머지는 불안정 노동자나 자영업자를 강요받을 것이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참교육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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