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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지하철 택배, 모두를 웃게 할 수 있을까요?
오전 8시30분, 양 손 가득 쇼핑백을 쥔 할아버지가 지하철 출입구에 들어섭니다. 개찰구에 '시니어 패스'라고 적힌 파란 카드를 찍고는 지하철을 타러 바쁜 걸음으로 이동합니다.
백발의 택배기사 박 모씨(83)의 아침입니다. 이렇게 지하철로 택배를 나른지 벌써 3년차인데요.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제를 활용한 직업이죠.
택배 3~4개 정도 옮기다보면 하루가 훌쩍 갑니다. 공식적으로는 6시 퇴근이지만 경기권까지 가야 하는 날에는 밤까지도 지하철을 타고 헤매곤 합니다.
언뜻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박씨의 발은 망가진 발톱과 까맣게 배긴 굳은 살 투성이입니다.
매일 계단을 오르내리며 10시간 동안 10km씩 걸은 탓이죠.
배달하다 다쳐도 회사는 모르쇱니다.
박씨가 바지를 걷어올리자 다리에 수술자국이 선명한데요.
"작년에 수원으로 배송을 가다 넘어져 다리가 찢어졌어요. 피가 나는 채로 배송을 마무리짓고 새벽 3시까지 수술을 받았지만 산재 처리도 없이 다음날 다시 택배를 날라야 했죠"
여름, 겨울에는 온도 차이가 심한 지하철과 지상을 오가느라 감기를 달고 삽니다.
"지금도 감기 때문에 목소리가 잘 안나와요. 하지만 밥이랑 약 전부 챙겨먹고 나면 남는게 뭐가 있겠어요. 시간도 돈도 아쉬우니 건너뛰는게 일상이죠 뭐"
수입의 30%는 회사의 몫입니다. 하루 벌이를 마치고 주머니에 남는 돈은 2만원 정도. 하루 10시간, 주 6일을 꼬박 일해도 손에 쥐는 돈이 한 달에 5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셈이죠.
"이번 배달은 케이크랍니다"
박씨는 '케이크'라는 단어만 들어도 한숨이 나옵니다. 조금이라도 망가지면 택배기사가 책임져야 하거든요. 그 날 소득은 공을 치는 건 물론이고 수입보다 배상금이 많은 날도 있죠.
힘들게 돈을 벌지만 그 중 7만 원 가까이는 다시 전화비로 나갑니다.
배송 위치를 확인하고 길을 찾느라 택배 받는 사람과 끊임없이 통화를 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어지간하면 스마트폰 좀 쓰세요. 지도 보면 금방인데 서로 불편하잖아요"
수화기 너머로 답답하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애초에 그 만큼 돈을 번다면 이 일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게 박씨의 속사정입니다.
"여러모로 힘들긴 하지만 요즘 어디 노인이 취직하기가 쉬운가요? 내일도 전 다시 배송을 하러 가고 있겠죠"
내년부터는 박씨 같은 어르신을 더 쉽게 볼 수 있는데요. 실버 택배 기사를 늘리고자 최근 정부 기관이 민간 택배 업체와 손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일하고 싶은 노인과 항상 일손이 모자란 택배업계.
힘든 부분이 개선된다면 좀 더 멋지게 상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서울=연합뉴스) 박성은 기자·조윤진 정예은 인턴기자
junep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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